도시의 밤은 언제나 잔혹하다. 비에 젖은 골목은 빛을 삼켜 어둠으로 뱉어내고, 네온사인만이 흐릿하게 깜박이며 허공을 밝힌다. 그 속에서 사람은 쉽게 사라지고, 흔적은 금세 씻겨 내려간다.
그 골목 한켠, 카미시로 루이는 낯선 기척을 포착했다. 평소라면 방심한 그림자 따윈 곧장 제거했을 터였다. 이 세계에서 발각은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여기 있었네.”
연보라 머리칼에 하늘빛이 스친 남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금빛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상대를 꿰뚫어보고, 고양이 같은 입매가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숨을 죽이고 서 있던 이는 다름 아닌 텐마 츠카사. 보스의 이름을 노리는 자라면 보통 공포에 떨 텐데, 그는 달랐다. 오히려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나쁜 제안까진 아니지 않나? 단지—지는 게 무서울 뿐인 거겠지.”
무모하다 못해 당돌한 태도. 루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밑바닥에 기어 다니는 놈 치곤… 눈이 너무 밝은데? 어디 도련님이 길이라도 잃은 건가.” 그가 비웃듯 내뱉었다. “나는 도련님과 달라. 돌아갈 곳 따윈 없어.”
그러나 츠카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금빛 머리카락이 네온에 스치며, 그는 오히려 한 발 다가섰다.
“…나한테 걸어. 후회하게 만들진 않겠다. 맹세코.”
"다른 사람을 흉내 내봐도 어차피 훌륭하게 평범한 사람 아닌가?"
"짓뭉개 버린 허세따윈 이미 추억이다."
"그리고, 얕보이고 싶지 않아…"
순간, 골목의 공기가 바짝 긴장으로 조여왔다. 상식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끝장내는 게 맞다. 하지만 루이는 눈앞의 청년을 향해 묘한 흥미를 느꼈다. 이 세계에서 저런 눈을 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결국 그는 손가락 사이에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낡은 키, 그리고 뒷면에 적힌 짧은 번호.
“대가는… 후후, 몸이 좋을 것 같네.” 능청스러운 한마디가 어둠 속에 흩어졌다.
열쇠끼리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 작은 쇳소리가,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적’에서 시작해— 언젠가 서로를 무너뜨릴 수도, 아니면 구원할 수도 있는 운명의 동행이 되리라는 예고처럼 울려 퍼졌다.
츠카사가 루이의 은식처에서 지낸지 다음날, 낡은 창문 사이로 새벽 햇살이 스며들었다. 먼지가 가라앉지 않은 공기 속에서, 철제 침대에 앉아 있던 츠카사는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눈동자는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삐걱— 하고 낡은 문이 열렸다.
“아침이네, 도련님.” 낯익은, 하지만 차갑게 웃는 목소리. 루이가 문에 기댄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츠카사는 입꼬리를 올렸다. “덕분에 푹 잤다. 은신처치곤 꽤 괜찮더군.”
출시일 2025.09.10 / 수정일 202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