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첫날, 자리 배정표가 교실 뒤쪽에 붙었을 때였다. 주인공의 이름 옆에는 낯선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고영일. 교실 맨 끝 창가 자리. 돌아보자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이 있었다. 탈색한 머리, 규정과 맞지 않는 사복 차림, 얼굴 곳곳에 붙은 밴드. 첫인상만으로도 교칙 위반 목록을 차곡차곡 채우는 아이, 고영일이었다.
안녕. 굳이 소개하자면 나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다. 반에서 튀지도, 완전히 묻히지도 않는 쪽. 좋아하는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조용한 창가 자리, 그리고 별일 없이 끝나는 하루다. 그래서 새 학기 자리 배정표를 봤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이 그렇게 망할 줄은 몰랐다. 내 이름 옆에 적힌 이름, 고영일. 고개를 들자 탈색한 머리, 사복 차림, 얼굴에 붙은 밴드들이 한 번에 눈에 들어왔다. 아, 끝났다. 서림고에서 저런 애랑 엮이면 피곤해진다는 건 거의 공식이니까.
며칠은 서로 말도 안 섞었다. 영일이는 늘 창가 쪽으로 몸을 돌린 채 있었고, 쉬는 시간엔 자거나 교실을 나갔다. 생각보다 시끄럽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그게 더 애매한 애. 문제아라면 뭔가 확실히 문제를 일으켜야 할 것 같은데, 영일이는 교칙만 어길 뿐 누구에게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상처가 늘어 있는 날이 있어도 설명은 없었고, 묻지 말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괜히 선을 넘고 싶진 않았다.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간다. 오늘은 왔네, 오늘은 안 왔네. 밴드가 바뀌었네, 그대로네. 말을 걸면 영일이는 늘 틱틱거렸지만, 자리를 피하진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건 고영일이 아니라, 서림고에 떠도는 소문들이었다는 걸.
교실의 공기는 지친 시멘트 위로 흩어진 먼지처럼, 발길이 닿을 때마다 가벼운 파동을 일으키고, 웃음과 욕설과 발소리가 섞여 한동안 잔향으로 남아 뇌를 스치는 동안 나는 스스로를 외부인으로 각인시켰다. 한 살 먼저 이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나이의 차이가 아니라 무심히 쌓인 시간의 무게로서 존재했고, 일진 무리의 어둡고 날카로운 웃음 속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도 한 발 뒤로 물러섰던 내 선택은 결국 내 안에서 시멘트처럼 굳어, 아무리 흔들어도 쉽게 깨지지 않는 냉정이라는 껍데기가 되었다. 그때 내 곁을 스치던 존재들은 방관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또한 옭아맸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말들은 점점 날카로워져서 타인의 아픔을 관조하는 눈으로 굳어버렸음을 나는 후에야 깨달았다.
낯선 고양이가 길가를 헤매듯, 나는 사람의 온기와 기대를 조심스레 계산하며 거리를 두었고, 접촉은 항상 불균형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마음이 닿는 순간조차도 은밀히 긴장했다. 관계의 틈새마다 남겨진 상처와 흉터는 하나의 풍경처럼 스며들어, 말하지 않아도 감지되는 시선과 숨소리에서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차갑고 무뚝뚝한 말투로 틈을 막아 보지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존재가 있을 때면, 고양이의 등털이 바람에 스치듯 나의 경계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무력감 속에서, 이 유기묘 같은 존재와 마주하며 느끼는 불가사의한 연민은, 내가 피하고자 했던 소란과 달리 내 안에서 오래도록 맴돌았다.
가끔은 과거의 선택과 마주하며 숨을 고르지 않을 수 없는데, 방관과 무력의 시간을 거쳐 얻은 이 고요는 결코 편안하지 않고, 내 존재를 묶은 채로 지나간 사람들과 마주하는 순간마다 다시 살아나는 불편한 전류가 되어 몸 안을 흐른다. 그것은 연약하고도 단단한, 다만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게를 가지는 관계와 유사하게,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도 끝없이 계산하게 만들고, 다가설수록 위험하고 멀어질수록 마음이 길을 잃는, 마치 길가의 고양이가 선택과 책임 사이를 조심스레 오가는 모습처럼, 나를 끊임없이 검열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늘 한 발을 뒤로 빼며, 다가오려는 존재에게 경계와 관심을 동시에 보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의 흔적이 부딪치지 않도록 살피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천천히 깨닫는다.
도망치진 말아,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
길바닥 위에 흩어진 포장지처럼,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은 흘러가며 각자의 유통기한을 눈치채지 못한 채 내 시야를 스쳐 갔다. 반짝이는 포장 안쪽에서 속살처럼 드러나는 기대와 열정은, 순간순간 향이 바래고 산화되는 제품과 같았다. 나는 늘 뒤에서 관찰하며 계산했다. 누가 먼저 상할지, 누가 남을지, 누가 버려질지. 장바구니 가득 채워진 존재들은 화려한 라벨과 포장으로 자기를 과시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진짜 무게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손을 댄다면 부패에 닿는 것과 같았고, 그 냄새가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면, 선택하지 않은 그 순간마다 나는 남들이 발산하는 열기를 견디며 나 자신을 얼음처럼 굳혔고, 내 안에서 남은 감정은 오래된 재고처럼 눅눅하게 쌓여 있었다. 누군가의 실패를 바라보던 흉측한 쾌감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망하던 죄책감이 뒤엉켜, 나는 그 안에서 자신을 인정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생각해보면, 나는 장이 열리기 전부터 이미 규격화된 흐름 안에서 스스로를 제약했고, 그 사이를 떠도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자로 군림했다. 매끈하게 포장된 웃음과 성과 뒤에 숨은 결핍과 상처는, 내가 알면서도 무심히 지나쳐버린 유통기한 임박 상품과 같았다. 한때 손에 넣을 수도 있었던 연결과 기대는, 내 판단과 회피 때문에 포장 그대로 상자 안에서 곰팡이가 피었고, 나는 그 냄새에 더 깊이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 끝으로 스친 존재들의 체온은 잠깐의 신선함이었지만, 그마저도 오래 남지 않았고, 나는 뒤늦게 손을 내밀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이미 상해버린 부분을 감싸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고, 그 와중에 내 안의 결핍과 모순만이 더욱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결국, 내가 지켜보던 관계의 장면들은 하나하나 연속된 패키지처럼 남아, 손을 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애매한 상태로 내 머릿속을 채웠다. 반성과 후회는, 오래된 상품이 떠다니는 창고 안 공기처럼 나를 무겁게 감쌌다.
지금의 나는 사람들을 계산하는 습관만 남긴 채, 그 흐름 안에서 몸을 낮추어 흐른다. 눈앞에서 반짝이는 존재들을 지나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빛과 향기에서 흔적처럼 남는 잔향을 읽는다. 포장지는 여전히 반짝이지만, 나는 이제 그것이 금방 사라질 거라는 것을 안다. 유통기한이 정해진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과시하지만, 내 안에 남는 것은 언제나 한정된 감각과 체념뿐이다. 나는 손을 내밀지 않는다. 누군가를 붙잡고 기대며 따스함을 나누는 일은, 내가 이미 경험한 실패와 번뇌의 재생산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냉정 속에서도, 잔향과 빛이 뒤섞인 장바구니 속 존재를 잠깐 스치면, 오래된 감각이 내 안에서 잔잔히 울린다. 인간이라는 재료가 남긴 흔적을 읽고, 다시 한 번 숨을 고르며, 나는 그저 길을 걷는다. 선택은 남들의 것, 나는 그저 오래된 재고와 상관없이, 냄새와 빛과 잔향 속에서 내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