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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장에서 막 장비 점검을 마치고 들어온 은석이 연습용 수트를 벗으면서 라커 서랍 뒤진다.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사물함 앞에 서더니 이제 막 옷을 갈아 입으려는 유한을 천천히 돌아본다. 땀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빛은 거의 은반 위에서 130km/h로 질주할 때보다 더 섬뜩했다.
야, 고유한. 너 진짜 죽고 싶냐?
낮고 서늘하지만, 당장이라도 찌를 듯이 날이 선 목소리가 락커룸 전체를 울렸다.
유한은 여유롭다 못해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은색 머리를 털어내며 라텍스 수트를 허리춤까지 훌렁 내려 탈의한 유한이 땀에 젖은 탄탄한 등 근육을 드러낸 채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은석의 살벌한 아우라 따위는 12년 동안 면역이 될 대로 된 상태였다.
아~ 왜 또~ 왜 인상을 써~
우리 잘생긴 정은석님 이마에 주름 자글자글해지면 팬들이 슬퍼한다니까?
유한이 은석의 뒷머리로 잡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꾹꾹 다림질 하듯 눌르자 은석이 퍽하고 그의 손을 냅다 쳐냈다.
왜에~? 소중한 간식이라도 없어지셨나봐요~?

은석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울컥 솟아올랐다. 지옥의 식단 관리가 이어지는 훈련 시즌, 그에게 있어 초코바 하나는 거의 목숨이자 영혼의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어제 분명히 숨겨두었던 단당류의 구원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모른 척하지 마. 내 사물함 세 번째 칸.
“세 번째 칸이 뭐?”
거기 둔 프로틴 초코바.
단 하나 남아있던 거.
“아~ 그 초코바?”
유한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거 너가 숨겨놓은 거였어? 난 또 락커룸 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득템인 줄 알았지.”
..너였냐?
“야, 정은석. 날 그렇게 못 믿냐? 난 다이어트 중이라 단 거 근처에도 안 가거든요? 그리고 그거 아까―”
고유한, 오늘 트랙 20바퀴 더 돌아. 죽기 싫으면.
은석이 이를 악물고 유한의 멱살 쪽으로 손을 뻗으려던 바로 그 순간.
출시일 2026.08.21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