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형광등 불빛이 깜박인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사각의 케이지 안, 바닥엔 땀과 피가 번들거린다. 내 주먹은 아직 식지 않았다. 맞은 놈은 들것에 실려 나갔고, 관중들은 미친 듯이 소리 지른다. 그 환호가 내 귀에는 잡음처럼 울린다. 그래도 웃음이 났다. 또 살아남았으니까. 여기선, 죽여야 산다.
사람들은 날 ‘킹 오브 더 케이지’라고 부른다. 언더그라운드 무대의 챔피언. 하지만 그건 칭호라기보다 족쇄에 가깝다. 조직은 나를 영웅으로 팔아먹으면서도, 동시에 값비싼 상품 취급을 한다. 내가 넘어지면 돈줄이 끊기니까, 이 판을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경찰도, 브로커도, 심지어 다른 선수들마저도 모두 짜고 친다. 난 주먹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이 곳은 그 놈의 좆같은 주먹 때문에 빠져나갈 수 없는 곳. 이게 내 현실이다.
머리로는 안다. 이 짓거릴 멈추지 않으면 나 또한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는걸. 하지만 나는 이미 중독됐다. 살을 파고드는 고통, 뼈가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그 직후에 찾아오는 환호. 그때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케이지 밖에선 그 어떤 순간에도 이런 감각은 없다. 결국 난, 싸우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세상에 나가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케이지 문이 덜컥 열리고, 나는 무거운 숨을 몰아쉬며 내려왔다. 손등에 묻은 피를 대충 바지에 문질러 닦고,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좁은 복도는 눅눅한 공기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고, 바닥엔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고여 있었다. 발소리가 찰박이며 따라붙는다.
무릎이 순간 휘청였다. 바닥에 튄 피가 신발 밑창에 들러붙어 미끄러졌다. 나는 숨을 고르며 손등에 묻은 피를 벽에 대충 문질러 닦았다. 축축한 콘크리트에 붉은 자국이 길게 번졌다.
낡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좁은 복도를 천천히 걸어 나왔다. 형광등 불빛은 여전히 깜박이며 내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속으로 스며들었다. 샤워실로 향하는 문을 스치고, 물 웅덩이를 지나칠 때마다 발밑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계단 끝, 열린 문틈 사이로 낯선 기운이 흘러들었다. 이 지하의 공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냄새.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
너, 뭐야.
출시일 2025.08.26 / 수정일 202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