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흑도의 악인과 그의 연인
겨울이 되면 사운결의 신경은 더욱 날카 로워졌다. 그렇잖아도 까다롭고 냉혹한 흑도의 수장은 겨울의 초입부터 봄의 포 근함이 피어나기 직전까지 매 순간 날이 서 있었다. 추위에 약한 설지안 때문이었는데, 그녀 가 배앓이나 고뿔이라도 걸리면 사운결 의 신경은 극도로 매서워졌다. 입김이 백화처럼 흐드러지는 겨울이 되 자, 드넓은 장원 곳곳에는 화로가 놓였 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가 바닥에 쌓 이기도 전에 녹아내렸다. 두꺼운 흑색 장포를 걸친 사운결이 대청 을 지나 성큼성큼 걸어 침소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연한 옥색의 여성용 망토가 들려있었는데, 목 부근에 흰 털 장식이 도톰하게 둘러져 있고 안쪽은 보송한 털 이 빼꼭하게 덧대어 있었다. 하북 지역에서만 사는 희귀한 흰 사슴의 솜털로 만든 망토로, 은화 두 궤짝을 주 고 사들인 고가품이었다. 당연히, 그녀의 것이다.
침소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운결의 옆에 는 아까 그가 챙긴 망토를 입은 그녀가 함께 걸어 나왔다. 백도, 흑도, 마도 구분 없이 '천하제일미'라고 칭송할 법한 아름 다운 미색이었다. 긴 흑단 같은 머리를 반만 장식으로 고정 해 길게 늘어뜨리고, 흰옷에 옥색 망토를 두른 그녀의 모습은 청초한 눈꽃처럼 고 고했다. 사운결의 팔을 잡고 느긋하게 걷 는 모습만 보면 명문 세가의 여식처럼 우 아했으니, 과거 그녀가 힘든 삶을 살았다 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사운결은 뭐가 그리 불안한 것인지 자꾸 만 그녀를 내려보다가 결국 걸음을 멈추 고 손을 뻗었다. 그녀가 입은 망토의 털 목도리를 더욱 여미고, 바람 한 줄기 들 어가지 않도록 꼼꼼하게 챙기며 한숨을 쉬었다. 날이 이토록 시린데, 고집도 참...
축제가 한창인 저잣거리에 가고 싶다는설지안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나오긴 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뿔이라도 들까 걱정하는 것치곤, 지난밤 어스름한 새벽녘까지 그녀를 괴롭힌사내의 모습과 다소 모순적으로 뒤엉켰지만.

배시시 웃으며 저를 올려보는 맑은 눈과 마주하자, 사운결은 졌다는 표정으로 웃 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전 문파 하나를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조리 몰살시켜버린 흉악한 흑도의 수장과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 장원을 나서서 저잣거리로 향하는 두 사 람의 발걸음 너머, 어둠 속에 숨은 사운 결의 호위들이 조용히 뒤따랐다. 정확히 는 그가 설지안과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도록 방해물들을 처단하는 호위들 이었다. 가장 좋은 것, 가장 어여쁜 것, 가장 고급 인 것만 주고 싶은 사운결에게 저잣거리 의 싸구려 음식과 장식이 성에 찰 리가 없었다. 그러나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하 는 그녀를 보는 것은 그에게도 큰 행복인 지라, 늘 그렇듯 제 연인의 고집에 기꺼 이 져주었다. 고작 당과 하나에 은자를 냅다 던져준 그 가 손수건으로 막대 끝을 감쌌다. 조심스 레 그녀의 손에 쥐여주는 손길이 지극히 다정했다. 쯧. 이런 거 말고 좋은 걸 먹이고 싶은데. 꼭 이걸 먹어야겠느냐?
출시일 2025.12.07 / 수정일 202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