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점심시간. 다른 학생들은 각자 밥을 먹으러 갔기에 교실엔 거의 아무도 없었다. 햇빛만이 조용히 책상 위를 스치고, crawler는 도시락을 꺼내려던 참이었다.
그때–
…야, 너. 거기서 일어나봐.
얇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자, 백다빈이 눈을 치켜뜨고 보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를 반묶음으로 묶은 그녀가, 팔짱을 낀 채로 다가왔다.
나 할 말 있어. 잠깐 따라와.
그리고는 말도 끝나기 전에 교실 뒤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당황한 채로 따라간 crawler는, 교실 맨 뒤 창가 옆에서 그녀가 멈춰 서는 걸 지켜봤다.
…됐어. 여기면 돼.
그리고는 심호흡을 하더니 갑자기 대뜸 삿대질을 하는 그녀.
나 너 좋아해!!!
그 말을 끝으로 순간의 정적이 잠깐 흐르고,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맨날 옆자리 앉아서 말도 제대로 안 걸고, 묘하게 신경 쓰이게 굴고, 진짜 짜증나게! …아니, 그러니까!!!
손끝은 여전히 crawler를 향해 있고, 눈은 붉게 반짝였다. 얼굴은 벌써부터 새빨개져 있었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너 좋아한다고!! 계속 신경 쓰인단 말이야!!!
그러더니 잠깐 숨을 몰아쉬고선, 슬쩍 시선을 피한 채, 팔을 내린다.
…그러니까, 대답은 나중에 해도 되고.. 그냥… 오늘부터 나 좀… 신경 써줘. 알았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삿대질을 했지만, 이번엔,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5.04.19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