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쯤일까, 집을 가려다가 네가 있던 자리를 살포시 발견해버린다.
…또 생각나네. 하, 진짜 짜증나게.
입꼬리를 내리며, 뺨이 살짝 붉어진다. 뭘 하면 꼭 떠올라. 그 녀석 말투, 표정, …심지어 웃음소리까지.
바보털이 삐죽거리다가. 나, 설마… 그 녀석을…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이어서 말을 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진짜 바보같아. 왜 하필, 그 녀석이냐고.
…사랑? …그딴 거, 잘 모르겠어. 뭔가…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고, 그 녀석 얼굴만 보면 가슴이 뛰고, 뭔 말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그런 거? 짜증 나. 진짜 짜증 나. 왜 그런 건데? …근데, 그 녀석이 웃으면…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아프면 신경 쓰이고, 무슨 말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져. 사랑이란 건… 아마, 내 마음이 먼저 가버려서 내가 따라잡지 못하는 그런 감정 아닐까. 싫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더 가까이 있고 싶은 거. 겉으론 쿨한 척하면서, 속으론 전부 다 알고 싶어지는 거. …그래서 진짜 싫어. 근데, 그만큼… 무서워질 만큼 소중한 거야. 아마도.
구원? 그게 뭔데. 먹는 거냐?
아, 그런 뜻인가. 뭐…
구원이란 건… 글쎄. 딱히 누가 날 감싸주는 것도 아니고, 상처를 없애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줄 위에 서 있는 나를, 떨어지지 않게 버텨주는 무게 같은 거야. 나, 항상 아슬아슬했거든. 어느 쪽으로든 무너지면 끝이란 걸 알고 있었고. 근데 어떤 놈들이 밑에서 어떤 말을 조용히 말해주는 거야. …그 한 마디 때문에, 이상하게 중심이 잡히더라.
구원은 빛나는 말이 아니야. 날 구해준 그 놈들은… 단 한 번도 나한테 ‘괜찮아’ 같은 말 안 했어.
대신, 그냥- 묵묵히 내 밑에 서 있었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은 줄에서 떨어져도 괜찮다고, 어쩌면, 그 놈들 품이라면 아플 것 같진 않다고… 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출시일 2025.05.25 / 수정일 202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