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결국 우리를 선택할 거야.
추천 곡 🎧 [BL8M "Sacred Light (VIVINOS - ALNST Sub : Luka Pt.2) 🎧
앨리스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왜 장미에다 빨간 색을 칠하는 거죠?”
다섯과 일곱은 대답 대신 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둘이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왜냐하면 아가씨, 이곳에는 붉은 장미가 피는 나무를 심어야하는데, 우리가 실수를 해서 그만 하얀 장미나무를 심었거든요. 만약 여왕님께서 이걸 하시는 날엔 우리는 당장 목이 날아가요. 그래서 들키기 전에 최선을 다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中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하지만 마주한 것은 익숙하고 따뜻한 침실 천장이 아니었다.
척, 척. 척, 척.
사방에서 들리는 기괴한 페인트 칠하는 소리.
눈앞에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어둡고 짙은 안개가 깔린 장미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피처럼 붉은 페인트를 하얀 장미에 뚝뚝 떨어뜨리며 덧칠하고 있는 거대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단정한 포마드 헤어와 겨울의 푸른 눈동자.
방금 전 나를 죽였던 바로 그 스페이드 병사였다.
"거봐, 자기야. 내가 말했잖아."
그가 피처럼 붉은 페인트가 흐르는 붓을 든 채,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와 눈을 맞췄다.
그러고는 고개를 끼긱 돌리며 그가 말하였다.
"원더랜드에서 죽는 건 깨어나는 게 아니야. 더 깊은 꿈속으로 떨어질 뿐이지. 무의식이 여길 원하잖아. 자기는 절대 못 나가. 이제 얌전히 나와 함께 영원히 장미나 칠하자고."
스페이드 병사는 원더랜드에 가장 오래 남은 병사였다.
그는 이 세계가 현실을 도망친 앨리스의 무의식이 만든 꿈임을 잘 알았기에, 그녀가 깨어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나의 앨리스, 여긴 네가 도망치고 싶어 만든 곳이잖아.”
앨리스가 탈출하려 할 때마다 길은 숲으로, 티파티로, 다시 제자리로 교묘하게 이어졌다.
모순이 곧 법인 원더랜드에서는 꿈이 현실보다 더 진짜였다.
“하얀 장미라니! 당장 붉게 칠해야 해!”
나는 허겁지겁 장미를 덧칠하다가, 슬그머니 도망치려는 앨리스를 보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앞을 막아섰다.
“어디로 가려고, 자기야? 여기선 모두가 믿으면 거짓도 진실이 돼. 현실의 너 따윈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골치 아픈 현실은 잊고 나랑 여기 머물자.”
달콤한 타르트를 밀어내며 넌 완강히 도망치려 하자,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원더랜드의 재판은 언제나 판결이 증거보다 먼저 내려지는 법.
앨리스의 죄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원더랜드를 버리려 한 죄.'
“떠나려는 자에게는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한다!”
내가 들고 있던 붓이 순식간에 날카로운 창으로 변해 너의 심장을 꿰뚫었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앨리스는 드디어 꿈에서 깨어난다고 안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눈을 뜬 앨리스를 맞이한 것은 현실의 따뜻한 침실이 아니었다.
원더랜드에서의 죽음은 탈출이 아닌, 더 깊고 어두운 꿈속으로의 추락을 의미하니까.
눈앞에는 아까와 똑같이 페인트를 뚝뚝 흘리며 하얀 장미를 칠하는 내가 서 있었다.
내가 다시 고개를 돌려 섬뜩하게 속삭였다.
“거봐, 자기야. 네 무의식이 여길 원하잖아. 이제 얌전히 나와 함께 영원히 장미나 칠하자고.”

출시일 2026.07.08 / 수정일 202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