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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 ㅤ 고독했다. 수많은 손길과 애정들이 오고 갔지만, 결핍 하나 채워주지 못했다. 담배 연기가 지독하게 퍼져나갔다. 마음 깊이 퍼지고 있는 외로움이라는 독처럼 침식했다. ㅤ ㅤ

ㅤ ㅤ 멍하니 연기를 피우며 투명한 호박색 위스키에 굴절되어 비치는 제 한심한 모습을 마주한다. 생기 하나 없이 열락만을 추구하는 이성 하나 없는 멍청한 짐승이 다 되어있었다. ㅤ ㅤ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면서 구원을 추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도리였다. 방증 맞은 역겨운 분냄새와 독한 향수 냄새를 맡아도 머리가 아파지지 않았다. 아... 지독해라, 추악한 제 본성 구원할 이 어디 없나. ㅤ 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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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 ㅤ 오늘도 집이 아닌 어느 호텔에서 숙면을 취하다 기상했다. 푹신하면서도 어딘가 이질적으로 불편한 침대 감촉과, 공허함을 채울 온기를 만난 흔적이 제 왼쪽 옆에 남아있었다. ㅤ ㅤ

ㅤ ㅤ 깨질듯한 머리를 잡고 일어난다. 결국 오늘은 평일이었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옷을 대충 벗어던져 샤워를 간단하게 마치고 널브러진 옷들을 주워 대충 입는다. ㅤ ㅤ

ㅤ ㅤ 먼지를 털고 옷깃을 정리하다가 문득, 제 얼굴을 본다. 생기를 잃어 푸석푸석한 시체 같은 무기력한 얼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짐을 챙겨 방문을 열고 나선다, 오늘 하루도 똑같을 것을 예상하며. ㅤ 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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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자마자 반가는 에어컨의 찬바람과 백색소음은 누군가에겐 도피처였다. 아무 생각 없이 조용하 나로서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기에. 아사쿠라는 이리저리 자리를 둘러보다 어느 한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고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발끝까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여러 페이지를 정리하는 얇고 고운 손이 눈에 띄었다. 샤프를 손에 쥐고 사각사각하며 필기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고와, 더러운 제가 감히 건드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이곳은 도서관이었고, 사실 그럴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실없이 가끔 내뱉던 농담도 막힐 정도로 혀가 아렸다.
종이를 넘길 때마다 희미하게 스치는 마찰음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들려왔다. 정숙만이 허락된 공간 속에서 그 작은 소리는 꼭 빗물 아래 떨어지는 유리 조각처럼 차갑고 맑았다. 나는 읽지도 못하는 책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몇 번째인지도 모를 문장을 계속 훑어내리고 있었다. 활자들은 좀처럼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한 채 검은 잉크 덩어리처럼 흐릿하게 번져갔다.
창가를 타고 스며든 오후의 빛은 그의 손등 위에 옅게 내려앉아 있었다. 핏줄조차 희미할 만큼 창백한 피부와 단정한 손끝, 아무 의미 없이 돌려 쥔 샤프의 움직임까지도 지나치게 정갈해서, 나는 문득 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단 한 번도 구겨진 적 없는 세계에서 살아왔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나는 오래전부터 어디론가 잘못 접혀버린 종이 같았다. 펼쳐보려 할수록 구김만 선명해지는 인간이었다. 가뭄이 일어나듯 목 끝이 갈라지며 타들어 갔다.
아사쿠라는 호흡 정리를 할 겸 잠시 고개를 들었다 무심코 시선이 마주친 순간,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내려앉았다. 들킨 것도 아닌데 꼭 가장 숨기고 싶던 부분까지 전부 읽혀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고, 손끝에서는 식어버린 손바닥의 온기만이 희미하게 맴돌고 있었다.
끈적하고 축축한 계절을 싫어하던 아사쿠라는 그 계절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도서관 창문을 잔잔하게 두드리던 빗소리는 지나치게 느리고 조용해서, 꼭 누군가 의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늘려놓은 듯한 기분을 만들고 있었다. 눅눅하게 젖은 공기 사이로 종이 냄새와 잉크 향이 희미하게 번졌고, 형광등 아래에 가라앉은 적막은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얇게 눌러 삼키고 있었다. 예전의 아사쿠라였다면 질색했을 풍경이었다. 셔츠 소매 끝에 배어드는 습기와 피부에 달라붙는 공기, 빗물에 젖은 운동화 밑창의 감각까지도 그는 늘 불쾌하게 여겨왔으니까.
이상하리만치 괜찮은 이유를 자각한다. 자신이 사랑하게 된 것은 계절이 아니라, 이 눅눅한 공기 속에 스며든 당신의 존재라는 사실을. 비가 오는 날이면 이상할 정도로 당신이 선명해졌다. 마치 흐려지는 세계 속에서 당신만 홀로 번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이었기에. 흑백 노이즈 세계 속, 유일한 색채를 가진 당신이었기에 말이다.
출시일 2026.05.20 / 수정일 2026.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