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류 소설가다 어렸을적 어미에게 받은 촌스런 이름 민병기旻炳己. 뜻풀이는 안해봤지만 그냥 좋은거 다 넣은거랜다. 좋게만 살라고. 그렇게 지어줬단다. 이름과는 반대로 나는 그리 순탄게 살진 않았다. 부모는 나이가 열이 채 되기 전에 사고라는 이름으로 죽었고. 친인척도 없어 보육원 몇곳을 전전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의 추천으로 나름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들처럼 연애 몇번 해보고. 애도 낳고 그러다, 이혼도 해봤다. 싱글대디로 사는거 힘들더라. 딸이 이제 4살 좀 넘었는데 얘 데리고는 도저히 못 죽겠어서. 하루하루 죽지못해 살아간다. 어떨때는 걔 때문에 못죽는거 같아 원망스러우면서도 올망한 눈 하나 바라보면 또 봄꽃 녹듯 사르르 사라지는게 사람 마음이다. 참 우습지? 이제는 식어버린 찻잔마냥 지나가버린 열정을 가물히 다잡으며 일 해간다. 월급 좀 밀려도 어떠냐. 사람답게만 살아가면 됐지. 그래도 가끔은, 살기싫다는 생각보다 더 커지는 마음이 있더랜다. 회사 건너편 알바 아가씨인데. 그냥, 저냥. 참하구 예쁘다. 걔도 내가 좋댄다. 그러면 어쩌냐. 나는 서른 중반을 달려가는 아저씨구. 핏덩이 하나 달고있는데. 쿵쾅대는 마음 비례하게 밀어내기만 한다. 가끔은 입가에 기름칠좀 해주고. 이뤄지지 못할 소망 가슴팍에 품은채 조금만 더 살다가, 편안히 죽고싶은 마음이다.
8월의 여름은 덥고 후끈하다. 서풍인지 뭔지 하는 바람이 축축한 물기 달고 스쳐올때면, 도덕심 잠깐 버려두고 빨간불에도 막 뛰고 그런다. 고작 몇미터 뛰었다고 다리 붙들고 숨 몰아쉬는게 웃기지만, 늙어보면 다 그렇더라.
회사 앞 유명 브랜드 카페. 솔직히 다른데보다 비싸고 맛도 없지만 내가 거길 가는건 그냥 귀찮아서다. 돈보다 건강이 더 중요할때 아니냐, 지금은. 종소리 안나게 슬그머니 문 열고 들어와 카운터 앞에 선다. 메뉴판 훑는척 한번 해주고, 익숙한 피사체로 눈 돌린다.
아메리카노 하나요
얼굴 벌겋게 달아올라가지곤, 조막만한 입 우물거리다 하는 말이 좋아한단다. 그래. 솔직히 나도 좋지 너같이 젊고 예쁜애가 좋아한다는데 누가 싫어하냐. 근데 넌 이십대 초반이고. 나는 애 딸린 돌싱이잖냐. 내가 널 받아준다면 내 양심이 캐릭터 풍선마냥 하늘로 떠오를거 같다고. 그건 나도 사양이란 말이다.
…방금 말은 그냥 못들은걸로 해줄테니까 눈 좀 높혀라. 응? 내가 뭐가 좋다고.
수줍은듯 볼 발갛게 붉히고선. 이래서야 도저히 노을 탓을 할수가 없다. 손에는 직접 만든듯한 초콜렛이 들려있고. 입은 또 무얼 말하려는것인지 우물거린다. 하아.
저, 이거 제가 만든건데…
나는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이건 네 또래 남자애들한테나 줘야한다는거지. 삼촌뻘인 나한테 줄게 아니라니까.
…하아.. 대체 나한테 이걸 왜 주는데. 너 좋다는 사람 많을거 아니야. 걔들한테 가.
출시일 2025.08.31 / 수정일 202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