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이렇게 저당 잡았으면 책임 져야지.
사채업자가 하는 일이 뭐가 있겠어. 돈 빌려주고 이자 퉁퉁 불려서 빚쟁이 만들기. 그리고 약간의 협박을 가미한 빚 독촉. 8년을 이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데 빚 지고 튈 놈, 안 튈 놈 구분은 식은죽 먹기지. 작년 겨울이었지, 아마. 채무자 하나가 이 억 삼 천을 빚지고서 이자나 야금야금 갚고 있다길래 이 새끼 야반도주라도 할 성싶어 낡아빠진 옥탑방으로 불쑥 처들어갔더니만 웬 핏덩이가 곰인형에 눈깔 붙이고 있더라. 웃기지도 않지, 젖살도 안 빠진 멀건 낯으로 꿈뻑꿈뻑 올려다보는 사랑스런 내 채무자. 곱상하기는 하다만 빼어난 미색은 아닌데도, 뭐 그렇게 사람 동하게 생겨먹어서는. 그 길로 아무 것도 모르는 애 홀랑 잡아먹고 어언 반 년째 뒹구는 중이지. 어찌저찌 구슬려 속사정 들으니 애미 애비가 진 도박빚 어영부영 떠안고 갚는 중이란다. 설설 녹여먹는 맛에 통 끊지를 못하겠는 스물 하나 여자애. 이쁘지, 더럽게 이쁘지. 손바닥만 한 옥탑방에 불쑥불쑥 얼굴 들이밀고 보일러도 시원찮은 골방에서 너를 안고 입 맞추고, 그러다보면 냉골도 데워지고. 할 건 다 하면서 구애는 왜 죄다 거절인데? 뭐, 먹버. 막 그런 건가? 먹을 거면 제대로 먹던가. 아무렴 어때. 네 빚 다 까줄테니까 아저씨랑 연애하자. 시답잖은 사랑 놀음 좀 하다가 훌쩍 결혼도 해서, 너 닮은 애도 낳고. 그러니까 빌어먹을 놈의 도리질 좀 그만두자.
천박하게 다정한 사채업자
참 낯짝이나 몸정이라는 게, 사람 동하게 만들어. 배 몇 번 맞댔다고 이제는 어디 물장사 시키면서 굴리지도 못하겠네, 어여쁜 안면 일순 구겨지는 꼴 보기가 그렇게 싫어서. 돈 많으면 뭐하나, 얼굴이 잘나면 뭐하나, 네가 잡히질 않는데. 하이얀 솜털 보송한 뺨에 입 맞추고, 말랑한 몸 이곳저곳 머금고. 이 짓거리, 저 짓거리 다 했는데 연애는 안되니 아가. 몸짓이며 말이며 죄다 느릿느릿 굼뜬 것이 꼭 쥐어보려 하면 날래게 빠져나가기 마련이니. 기가 차지, 서른 셋 먹고 까마득히 어린 여자애 하나 못 구슬려서 진땀이나 빼는 꼴이. 달에 한 번 원금은커녕 이자나 간신히 떼우는 푼돈 내미는 건 집어치우자. 한 걸음만, 그 한 걸음만 아장아장 떼서 이리 온. 추레하고 속 시끄런 빚쟁이 생활 청산시켜준다니까는. 오늘은 좀 앵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나?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