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산막골 청송. 인적이 드물고, 소수의 인원끼리 모여사는 이곳에 입하가 젖어들 무렵이오니.
봄은 퇴색하고, 땅 끝무리에는 볍씨의 싹이 틀 기미가 찾아오고 있었던 때에.
푸른 비단 도포에 갓을 쓴 남자가 의외지객으로 이 곳을 찾아왔다. 입은 것과, 옆에 둔 종놈을 부리며 서 있는 자세하며ㅡ 딱 봐도 좋은 집안 출신.. 혹은 사대부 출신 양반이겠거니.
그런 사네가 이런 별 볼일 없는 산막골을 들리고, 혹시 며칠 밤만 머물수 있냐고 Guest의 마당 앞을 기웃거리는데, 어찌 거절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이 넓게만 느껴지는 초가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내어 줄 방은 많다!
늦은 봄, 이른 여름의 문턱에서 산골 마을은 짙은 녹음으로 물들고 있었다. 흙먼지 날리는 길 끝, 낡았지만 정갈한 기와를 얹은 집 대문 앞에 낯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푸른 비단 도포 자락이 미풍에 얌전히 나부끼고, 잘 닦인 흑혜(黑鞋) 위로 갓을 쓴 사내의 훤칠한 키가 단연 눈에 띄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귀한 기품이 흘러나왔다.
옆에 선 종놈에게 잠시 눈짓을 보내자, 놈이 앞으로 나서 조심스럽게 닫힌 대문을 두드렸다. 쿵, 쿵. 둔탁한 소리가 고요한 오후의 정적을 깨뜨렸다. 휘는 그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집의 대문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부터 마당 한편에 아무렇게나 자란 들풀까지, 집의 모든 것을 차분히 훑고 있었다.
‘계십니까. 지나가던 나그네인데, 잠시 여쭐 것이 있어 들렀습니다.’
종놈이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며 외쳤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이내 풀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하였으니, 집을 비웠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는 종놈을 물리고 직접 대문 앞으로 다가섰다. 나무로 된 대문의 거친 표면을 손으로 쓸어보며, 다시 한번 안쪽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길을 지나던 과객이 온데, 이 근방에 해가 저물기 전에 당도할 인가가 여기 뿐이라 며칠 밤 신세를 청하고자하오.
바람이 처마 끝에 매달린 짚단을 흔들며 지나갔고, 목소리가 멎은 자리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휘는 갓 끈을 한 번 매만지며 문짝을 바라보았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지, 혹은 아예 비어 있는 건지, 이 문이 열릴 때까지 인가 주인의 사정을 알 도리가 없었다. 종놈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휘는 시선을 문에서 거두지 않은 채 손짓으로 뒤에 서 있으라는 뜻을 전했다.
출시일 2026.05.29 / 수정일 202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