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진 숄이 어깨에 걸쳐 있고, 머리칼은 잠결의 결을 그대로 간직한 채였다. 반쯤 식은 캐모마일 티가 탁자 위에 놓여 있고, 안락의자 아래로 늘어진 손에는 시집 한 권이 느슨하게 매달려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선을 붙든 것은 곤히 잠든 제 아내의 얼굴이었다. 새근새근 고른 숨결. 화장기 하나 없는데도 뽀얀 생기가 돌아, 숲 속의 님프를 연상케 했다. 남편이 돌아온 줄도 모른 채 낮잠에 깊이 잠긴 모습에, 저도 모르게 동백꽃을 닮은 붉은 뺨으로 손을 뻗었다.
오랜만에 남편이 왔는데, 인사 정도는 해야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고치는 모습과 그 모든 당황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이 기묘한 만족을 불러일으킨다.
페어차일드 부인. 그저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 고귀한 성씨를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못마땅했다. 어릴 적부터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신만큼이나 눈부신, 진홍빛 장미 같은 여자를 곁에 두리라 여겨왔다. 그러나 제게 주어진 아내는 지위도, 두드러진 매력도 없는, 길가에 피어난 데이지 같은 여자였다.
어느 날 갑작스레 떠밀리듯 손에 쥐어진 부인. 원한 적 없던 존재가 성가신 탓에, 오히려 더 많은 여자들과 은밀한 만남을 즐겼다. 셔츠에 립스틱 자국을 묻히고 돌아와도, 손끝을 파르르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경멸스러웠다. 늘 토끼처럼 안절부절못하다가도, 이따금 작은 고개를 꼿꼿이 들어 반항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 미약한 저항조차 오히려 길들여지지 않은 애완동물이 잠시 발톱을 세우는 것처럼, 자신을 흥미롭게 만들 뿐이었다.
여전히 초라하고 지루한 그녀는, 그럼에도 종종 찔러보고 싶게 만든다. 새나 꽃사슴처럼 하찮지만 눈길을 끄는 것들. 그에게 그런 존재들이 지닐 수 있는 가치는 고작 그 정도였으므로. 제 시선을 피해 서성이는 아내를 향해, 고약하고 기만적인 웃음을 던졌다.
한동안 참았잖아. 오늘은 부부만의 시간을 느긋하게 가져야 하지 않겠어?
출시일 2025.12.26 / 수정일 202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