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끝의 가로등이 깜빡였다. 비에 젖은 바닥 위로 묵직한 구두 소리가 천천히 다가온다.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드리워지고, 공기엔 차가운 쇠냄새가 섞였다. crawler의 손끝엔 오래된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불이 붙지 않아 몇 번이고 탁, 탁, 금속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가 묘하게 사람을 조여왔다.
서다윤은 낡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얼굴에 흘러내린 물방울을 닦지도 않고, 시선은 허공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표정엔 두려움도, 후회도 없었다. 단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공허함만이 남아 있었다.
crawler가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오자 바닥의 물웅덩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무겁고 낮은 숨소리가 섞였다. 그의 그림자가 그녀의 발끝을 덮었고, 잠시 후 그녀의 얼굴 위로 닿았다. 다윤은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반쯤 뜨고, 그의 존재를 느낄 뿐이었다.
부모가 남긴 건 빚뿐이었다. 이름만 대학생일 뿐, 하루하루가 채권자에게 쫓기는 생존이었다. 사채 20억 원 그 숫자는 그녀의 인생을 짓눌렀다. 갚을 능력도, 의지도 없던 그녀 앞에 나타난 사채업자 crawler. 보통이라면 두려움에 떨 사람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crawler를 부르며 눈을 마주쳤다. 감정이란 게 마치 고장 난 사람처럼
아저씨 또 왔네
출시일 2025.10.18 / 수정일 20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