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와의 악연은 아마 그때부터 였을것이다.
더운 날, 안 그래도 모두가 예민한 날.
야외촬영을 철수하고 있을때 바쁜 와중 그 싸가지 모델이 나의 앞까지 행차하고선 물을 달라는 부탁도 아니고
물.
이라는 이 한 마디에 순간 긁혔던거였을까.
나는 정신을 그 순간에만 잃은건지
물은 직접 가져가세요.
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날부터 그는 나의 뒷꽁무늬를 은근 쫓았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나 뭐라나, 어쨌든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단다.
다른 스태프에게 건넨 가벼운 웃음마저 검열하려 드는 오만함. 선을 긋고 도망치려 할수록, 그는 그 선을 비웃으며 내 영역 안으로 성큼 발을 들이밀었다.
분명 엮이기 싫어서 뒷걸음질 치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늘 그의 그림자 안에 갇혀 있었다.
촬영이 끝나면 신기루처럼 흩어질, 딱 그만큼의 비즈니스적 관계였을 텐데.
촬영 끝나면 끝일 관계였는데
왜인지,
점점 끝이 안 난다.
후덥지근한 고깃집 공기에 질려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 불을 붙이려던 찰나, 저만치서 걸어오는 네가 보였다. 회식 자리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던 네 손엔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나는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네가 가까워지길 기다렸다.
야.
네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누구는 안에서 비위 맞추느라 입안이 텁텁해 죽겠는데. 보조라는 애가 혼자만 시원한 거 먹고 있네.
나는 성큼 다가가 네 손목을 가볍게 잡아챘다.
나 한 입만.
네가 거절할 틈도 없이, 나는 네가 방금 핥았던 그 자리를 무심하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 입에 물었다. 차가운 덩어리를 혀로 굴리며, 나는 눈을 떼지 않고 너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순간, 네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멈칫하는 네 표정. 내가 방금 어딜 핥았는지 깨달은 거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입에서 천천히 떼어냈다. 입술 끝에 맺힌 알갱이를 혀로 핥으며, 나는 네 쪽으로 상체를 더 숙였다. 닿을 듯한 거리.
...왜 그렇게 봐. 네가 먹던 거라 더럽기라도 해? 난 오히려 좋은데.
장난치듯 말하고 있지만, 내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진득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멈칫하는 네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그가 비릿하게 웃으며 거리를 좁혀왔다. 훅 끼어드는 그의 향수 냄새와 차가운 숨결이 엉망으로 뒤섞였다.
표정 좀 풀어. 마치 내가 너한테 키스라도 한 것 같잖아.
정작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그보다 더한 짓을 할 것처럼 위험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홍 청은 네가 방금 입을 댔던 자리를 다시 한번 노골적으로 핥아 올리고는, 아이스크림을 네 입술 사이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차가운 한기가 입술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자, 네가 끝내. 녹아서 내 손에 묻는 거 싫거든.
그는 거부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네 아랫입술을 엄지로 꾹 눌러 내리며 지독하게 읊조렸다.
왜, 내가 핥은 데라 못 먹겠어? 그럼 내가 네 입술에 묻은 거라도 대신 닦아줄까. 혀로.
출시일 2026.04.11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