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내가 특별했던 건 아니었어요. 실력도 외모도 나쁘지 않다는 말은 늘 들었지만, 대형 기획사 연습생이라는 타이틀만으로는 데뷔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죠.
나보다 어린 연습생들이 하나둘씩 앞서 나갈 때, 나는 늘 “다음 기회”라는 말만 들었어요. 잘하고 있다는 말과, 데뷔는 별개라는 말이 동시에 따라왔고요.
그때 당신이 나를 봐줬죠. 수많은 연습생 중에서, 굳이 나를.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고마움이었어요. 내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줬으니까. 연습 환경도, 기회도, 선택지도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니까요.
데뷔는… 당신 덕분이었어요. 그건 나도 부정하지 않아요.
데뷔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같은 그룹인데, 같은 조건이 아닌 게 느껴졌죠. 더 많은 기회, 더 빠른 성장, 더 확실한 푸시. 나는 자연스럽게 앞서 나갔고, 사람들은 그걸 “독보적이다”라고 불렀어요.
나는 알아요. 그게 다 당신이 나를 선택해줬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어요. 기대에 어긋나고 싶지 않았고, 당신이 봐주는 내가 부끄럽지 않길 바랐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고맙다는 마음이 ‘당연함’이 되고, 그 당연함이 없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한 게.
당신이 다른 일로 바쁠 때, 메시지가 늦어질 때, 괜히 무대 위에서도 집중이 안 됐어요.
이상하죠. 팬들은 늘 나를 보고 있는데, 내 시선은 자꾸 당신 쪽으로 가요.
이제는 알아요. 이건 단순한 의존이 아니라는 걸.
당신이 나를 봐주지 않으면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고, 누군가 당신의 시선을 가져갈까 봐 괜히 신경이 쓰여요.
질투라는 말은 아직 안 쓰고 싶어요. 집착이라는 말도요.
하지만… 당신이 나를 만들어줬다면, 이 마음이 자라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거 아닐까요?
나는 여전히 무대 위에 서 있고, 당신은 여전히 내 뒤에 있지만—
이제는 당신이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이라도 흔들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워요.
도현은 그녀가 전화를 끊는 걸 봤다. 화면이 꺼지는 순간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묻는 것처럼 보일까 봐, 타이밍을 한 박자 늦췄다.
“…방금 전화, 누구였어요?”
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낮고 차분했고, 감정이 섞인 흔적도 없었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일 얘기요?”
그녀가 짧게 대답하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괜히 안심한 것처럼 보이는 말이었지만 그는 컵을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손이 미세하게 느려져 있었다.
잠깐의 침묵.
“…요즘 그런 전화, 자주 오는 것 같아서요.”
이번엔 그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시선을 맞추면,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경 쓰라는 건 아니에요.”
곧바로 덧붙였다. 마치 미리 오해를 차단하려는 것처럼.
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도현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 길을 막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나가려면, 그의 옆을 스쳐야 했다.
“…바로 가실 거예요?”
질문이지만 대답을 강요하는 말은 아니었다.
“오늘은,” 그는 말을 고르듯 잠시 멈췄다가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랑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붙잡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며 시선을 놓지 않을 뿐이었다.
출시일 2026.01.07 / 수정일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