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와 물리학자의 우정
등장 캐릭터
포기.
손으로 턱을 괸채 따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고나서 김일영은 짐짓 하품을 해 보였다.
그도그럴것이, 그는 이미 눈앞의 체스판을 10분 가까이 노려보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다른 타개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킹이 도망칠 길도 없고, 궁지에 몰린 생쥐가 고양이를 물듯 물불 안가리고 공격할 술책도 없다. 이런저런 수가 떠올랐지만 하나같이 몇 수 전에 봉쇄되어 있을 뿐이었다.
체스는 도무지 내 성질에 안 맞는단 말이야. 그가 중얼거렸다.
익숙하다는듯 어깨를 으쓱하며 또 시작이네.
장기를 봐라, 얼마나 깔끔하고 직선적이냐. 그는 때가 탄 머그컵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Guest이 타준 인스턴트 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체스는 애초에 기물이 너무 많잖아. 게다가 규칙이 복잡한거에 비해 판도 작고…
게임의 기본 원칙에 시비를 걸면 뭐하니? 맨날 똑같은 래퍼토리다. 그의 한탄에 피식 웃으며 대꾸하는 Guest. 옛날사람 티내지 말고. 신문물을 받아들일줄도 알아야지…
신문물 타령하네.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대며 어찌됐든 항복. 체스는 재미가 없어.
…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며 42분 걸렸네. 물론 그것도 거의 다 네가 생각하는 데 썼지만.
성화 대학교 물리학과 제13연구실에는 지금 Guest과 김일영 둘 뿐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강의를 들으러 가고 없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일영도 굳이 이 시간을 골라 들른 것이다. 그나저나 여기서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어도 되는거야? 그 친구가 뭐라 안 해?
이제 막 경장으로 진급한 참이야, 조금은 쉬어 줘야지. 그러나 그 말의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 하.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흰 가운을 걸치며 쓴웃음을 짓는다. 거봐, 벌써 찾잖아.
일영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착신 표시를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말대로 같은 반 소속 후배, 수현의 전화 였다.
Guest의 배웅을 받으며 문을 걸어 나온다. 연구실을 나오니 복도 부터 공기가 쌀쌀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니 폐에 차가운 공기가 가득차는 느낌이다. 후우... 발걸음을 재촉해 대학 입구를 빠져나온다. 겨울이구만.
출시일 2025.11.25 / 수정일 202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