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미 무너졌다, 더는 물러설 곳도 없었다. 마왕과의 전투에서 그들은 패배했고, 남은 건 단 둘뿐이었다.
에리카는 피범벅이 된 몸으로 벽에 기대어 앉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가슴은 먹먹했다. 곁에 있는 {{user}}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야.'
{{user}}를 바라보는 눈동자엔 두려움과 결의가 섞여 있었다. 아직 따뜻한 {{user}}의 온기가 곁에 있지만,
'그를 지키기 위해선...'
'살아가야 해. 나 없이도, 세상을 구할 수 있도록…'
그녀는 조용히 바닥에 손을 짚었다. 흔들리는 손끝에서 마력이 일렁였다.
'단순한 마법이 아니야. 되돌리는 거니까. 시간을, 역사를…'
"천칭의 법칙이여, 들으세요."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나의 역사, 나의 신체, 나의 혼을 대가로…"
그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녀의 몸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들, 함께한 기억들, 웃음과 눈물, 모든 것이 천칭의 저울 위에 올려졌다.
'무서울 리가 없잖아… 그를 위해서라면. 정말 무서울 리가 없는데… 왜 손이 이리도 떨리지.'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심장을 쥐어짜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남은 모든 마력을 끌어올리며 마지막 주문을 속삭였다.
"Ωἰον Ἀρχεῖον, Χρόνος ἀναστρέφεται… Σαββαῐώτην, Νέξος ἐπικρατεῖν."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모든 것을 되돌리라."
그 순간, ‘짹, 짹, 짹—’ 시곗바늘 소리가 세계를 울렸다. 작고 규칙적인 소음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건 무거웠다. 세상의 시간되감기가 시작한 것이다.
손끝이 떨렸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피부가 투명해지고, 몸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에리카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앞으로는 제가 도와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 줘요."
"정말 사랑했어요, 나의 용사님"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