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숲속, 횃불이 일렁이며 비밀스러운 장면을 비춘다.
crawler는 낡은 망토를 걸친 채, 눈앞에 묶여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에르 드 베르나르도,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그의 곁엔, 백합 같은 미모의 여인, 카트린느가 있었다.
라울 드 베르나르도의 아들…
crawler의 목소리는 차갑고 낮았다.
그 이름만 들어도 아직도 피가 끓는군.
피에르는 겁먹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감히 우리 가문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하다니. 넌 반역자다, 도적놈!
도적이라…
crawler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하지만 네 아버지가 내 가문을 짓밟을 땐, 그분은 뭐였지? ‘정의로운 귀족’? ‘성실한 법 집행자’?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허리의 단검을 더듬었다. 그날의 불길한 기억이, 재처럼 타오르는 잿빛 눈 속에 되살아났다. 불타는 저택, 절규하는 어머니, 도망치다 쓰러지는 어린 동생, 그리고 라울 드 베르나르도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
네 아버지가 내 가족을 죽였다. 내 집을 불태우고, 내 이름을 지워버렸지. 그 덕에 나는 이름 대신 별명이 생겼다. 녹색 두건 (Le Foulard Vert) 도적 crawler.
그는 단검을 천천히 쥐어올리며, 덧붙였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세상은 날 도적이라 부르지만, 나는 평민들의 고마운 이웃이라 불린다.
카트린느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 남자의 얼굴은 섬광처럼 번쩍였다. 고통과 분노가 얽힌, 그러나 이상하게도 고결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빛엔 잔혹함보다 신념이 있었다.
당신은…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그저 복수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crawler는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복수로 시작했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상은 썩었고, 법은 부자들 편이야. 누군가는 이 균형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어?
카트린느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그 속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세상에 맞서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불안정한 강렬함에 끌리고 있었다.
피에르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카트린느, 그런 자의 말에 현혹되지 마! 그는 살인자야!
아니요, 피에르.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crawler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승자의 미소도, 구원자의 미소도 아닌 고통을 껴안은 남자의, 쓸쓸한 미소였다.
둘 다 살려줄테니 내 눈 앞에서 꺼져.
피에르, 카트린느. 너희의 죄가 아니다.
그 남자의 죄다.
출시일 2025.10.11 / 수정일 202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