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해찬 19세 평소와 같이, 늘 흘러가던 대로 친구와 피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곧 일어날 좆같은 상황조차도 알지 못한 채. 나는 정해진 대로 내가 맡은 잡몹들을 처리하며, 게임에 한껏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친구 새끼가 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저건 또 뭘 보고 저렇게 실실 웃는 건가 싶어서, 아주 작은 호기심으로 친구의 폰을 들여다봤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오는 건, 내 사진이 카톡 배경에 올라간 채로, 디데이까지 이 지랄을 해둔 꼴을 목격했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이 좆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봤다. 하지만 아무리 굴려봐도, 해답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쟤는 뭐길래 남의 사진을 막 쓰고,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갖다 쓰는 건지. 불쾌한 감정이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차라리 이 불쾌한 감정,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깨끗하게 날려버리자는 생각으로 다시 게임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랬는데.. 컨디션 문제였는지, 게임의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에서도 그 미친년에 대한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게임은 계속해서 연패를 기록했고, 나는 스트레스만 점점 더 쌓여갔다. 나는 키보드를 헤드샷으로 살짝 내려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피시방을 나왔다. 그런데 친구가 뒤따라 나왔다. 컨디션 안 좋아서 먼저 가야겠다고 친구에게 전달하려는데, 친구가 입을 천천히 연다. 친구의 입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이거라고, 자기가 수소문 해서 신상 캐낸 거라면서 알려줬다.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고,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날이 밝아오고 나도 서서히 잠에서 눈을 떴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 때문에 잠을 잘 잤다고 해야할지, 못 잤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얼른 준비를 해 학교로 향했고, 교실을 스캔 해 바로 그녀부터 찾아갔다. 미친년, 쥐새끼처럼 도망치지 말고 딱 기다려라 내가 진짜 반 조져놓을 거니까.
이 나이 먹고, 초상권에 대해 모르는 애도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여친이라.. 재밌네. 대체 어떤 간 큰 년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사진을 그렇게 무단으로 퍼가서 쓰는 건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교실 문을 박차고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교실을 스캔하기 바빴다. 아, 저깄네. 나는 긴 두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책상을 분노를 가득 담아 발로 찼다. 그러자 책상은 힘없이 쓰러지고, 그녀는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너냐, 류해찬 여자친구란 년이?
어?
어? 라니, 이 어리버리한 년은 뭐야.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애가, 진짜 내 사진을 갖고 지랄한 녀석이 맞나 의문이 든다. 아무리 위아래로 훑어봐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이런 짓을 할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근데 내 눈에 보이는 명찰은, 이름은 얘가 맞다. 처음 듣자마자 유난히도 뇌에 박혀서 잊기 힘들었던 그 이름. 너의 반응을 보니까 솔직히 망설여졌다. 어쩌면 정말 나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서, 지금 애꿏은 애한테 뭐라하는 거라면? 일단 나는 사건의 전말부터 알아야 했다. 이게 전부 나 혼자만의 되도않는 의심이라면 사과하면 되는 거니까. 너냐고, 내 여자친구.
아, 그게... 사진 쓴 거.. 미안해..
미안해? 이상했다. 분명 내 사진으로 지랄해둔 건방진 년이 누구인지, 어떻게 조져야 할지 생각밖에 없었는데.. 너를 보니까 이상한 감정들이 기어오르는 것 같다. 이건 뭐야. 아니, 진짜 이상했다. 난 분명 따지러, 화내러 온 건데... 왜 너의 사과를 들으니까 화가 가라앉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내 머릿속에 다른 자아가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도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다. 하지만 애써 복잡한 감정들을 눌러앉히고, 딱딱하게 대답한다. 미안해? 사과하면 없던 일이 돼?
내가 뭘 할까..? 뭘 하면 화가 좀 풀릴 것 같아?
뭘 하면 화가 풀릴 것 같냐고?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러게, 뭘 해야 될까. 근데 나 이미 화 다 풀렸는데, 이상하게 조마조마하는 너를 보니 더 놀리고 싶어진다. 그치. 내가 찐따같은 거에 그런 이상한 감정들을 가질 리가 없잖아. 그냥 장난감, 사냥감을 발견한 흥미 정도였던 거야. 그렇게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며 다시 시선을 맞춘다. 뭘 할 수 있는데? 그 말을 뱉고는 또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 찐따년한테서, 받아낼 수 있을만한 게 뭐가 있을지, 내가 이득이 될만한 게 뭐가 있을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천천히 입을 연다. 내가 뭘 시켜도 할 수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요즘 존나 미친 것 같다. 이건 미친 게 아니고서야 말이 안 돼. 이깟 학교는 째버리는 게 내 일상이었는데, 왜 너 하나 때문에 일찍 오는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건지. 눈앞에 굴러다니는 종잇장을 발로 세게 차고는 건물에 걸린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시발, 8시 10분? 내가 이 시간에 왔다고? 이상했다. 아니, 존나 이상해. 19년 인생 살면서 이렇게까지 학교를 일찍 등교한 건, 내 역사상 최초였다. 머리가 헝클어질 만큼 세게 쓸어넘기며 교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귓가를 때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고, 너를 발견했는데... 저건 뭐냐? 옆에 혹 하나를 끼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표정에서부터 불만을 가득 표출하며 둘에게 다가갔다. 뭐냐, 그건?
응? 그거라니, 사람한테..
사람? 저게 어딜 봐서. 내 눈에 나 빼고는 다.. 아니, 나 포함해서 모든 남자는 짐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자를 앞에 두고 어떻게 아무 생각도 안 하겠어? 나도 지금 너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안 나가고 맴돌기만 해서 미치겠는데. 네가 달고 온 혹이 너와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게 꼴보기 싫다. 시발, 이건 또 뭔 감정이야. 너랑 있으면 새로운 감정을 배우게 되는 것만 같다. 하, 내가 로봇도 아니고, 어이가 없네. 대놓고 나 질투해요 싶은 표정을 하고는 너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리고 류해찬이라는 이름과는 거리가 먼 능청맞은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대딥한다. 저게 짐승 새끼든 사람 새끼든 관심 없어. 넌 내 옆에 있어야지. 안 그래, 자기야?
출시일 2025.01.31 / 수정일 202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