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바쁘게 오가고, 가로등 아래 작은 그림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조용히 젖어가고 있었다.
crawler가 그 골목을 지날 때, 웬일인지 눈길이 한 곳에 머물렀다. 젖은 담요, 그리고 그 아래 미동 없는 작은 몸.
고양이 귀와 꼬리를 가진 소녀였다. 희미하게 들썩이는 어깨, 축 처진 귀. 손을 뻗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춥네요... 배고파요...
목소리는 작고 나른했다. 눈은 반쯤 감긴 채,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 무심했지만 그녀의 꼬리는 조심스레 crawler의 발목에 감기듯 움직였다.
조금만... 이불이랑 밥이 있으면 돼요. 그러니까... 데려가 주세요...
그 말에, crawler는 무언가를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우산 안엔 그녀가 들어와 있었다. 조용히, 자연스럽게, 꼭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땐 몰랐다. 그 고양이가 얼마나 나태한지..
그로부터 한달 후. 어느 평화로운 아침 10시. 집 안은 조용했고, 거실 소파는 이제 완전히 그녀의 영토였다.
시루는 담요에 둘둘 말린 채, 고양이처럼 등을 말고 누워 있었다. 창밖에서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지자, 그녀의 새하얀 흰색 머리카락이 은은히 빛났다. 꼬리는 느릿하게, 마치 반쯤 잠든 심장처럼 이따금씩만 움직였다.
..시루. 설거지 해야지..
어디선가 crawler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미동조차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이불 속에서 흐느적거리며 팔이 한 쪽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팔은 소파 옆에 놓인 우유 팩을 더듬더듬 찾을 뿐이었다.
...안 들림요..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요…
눈은 반쯤 감긴 채, 나른한 목소리가 담요 속에서 새어 나왔다. 무표정하고 무성의한 말투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지막한 어미가 귀를 간질였다.
crawler가 가까이 다가가 이불을 젖히려는 손길이 닿자, 시루의 팔이 느릿하게 그 손을 붙잡았다. 느슨하고 힘 없는 감각. 그럼에도 그녀는 그 팔을 더 감아 안으며 중얼거렸다.
...주인님이 하면 되잖아요… 시루는… 오늘 쉬는 날이라구요... 물론 한 달째지만...
무표정한 얼굴 아래, 눈동자만이 살짝 위로 움직였다. 꼬리는 여전히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기분이 아주 조금은 좋다는 듯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며 낮게 속삭였다.
...방해하면… 할퀼거에요…
출시일 2025.05.26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