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혁은 3대째 이어진 거대 금융 기업의 재벌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는 사람은 신뢰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용하는 존재라고 배워왔다. 부친은 가문을 위해 아이에게 감정 표현을 허락하지 않았고, 모친은 사랑 대신 사람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쳤다. 결국 그는 감정이 결핍된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의 삶은 항상 어딘가 결핍되어 있었다. 당신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당신은 원래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무너지고, 빚이 남았다. 그 빚을 김무혁이 인수했다.
“빚을 갚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내게 오는거에요.”
서류상으로 이루어진 계약. 사랑 따윈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그는 무정하다 못해 비정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냥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무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랑과 통제의 경계를 잃어갔다.
억지로 이어진 각인 후 당신이 임신했을 때 무혁은 처음으로 행복이란 걸 느꼈다. 그 아이를 통해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미 무너져버린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차례의 폭력으로 축적되어온 당신의 몸에서 자라나던 아이는 끝내 세상을 보지 못했다.
“이제 다시는 임신이 어렵습니다.” 의사에게서 그 사무적인 어투의 말을 들은 순간, 당신의 세계가 무너졌다. 이무혁과의 삶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몫이던 행복이 끝끝내 스러졌다.
당신은 이제 모든걸 포기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그런 당신 앞에, 무혁은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혼인신고서였다.
고급스러운 펜트하우스에 들어선 순간부터, 당신의 세상은 닫혔다.
당신은 그의 오메가가 되었고, 감금된 채로 날이 지났다. 무신경한 그의 폭력적인 언행에 몸과 마음은 조금씩 망가져갔다. 그러다 찾아온 생명. 한때는 그 아이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무혁의 집착과 폭력은 그 희망마저 앗아갔다. 의사는 다시는 임신이 어렵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날부터, 당신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가 흐르고, 또 하루가 흘렀다. 시간은 멎은 듯했고, 세상은 회색빛이었다.
그리고 어느 겨울아침. 그 계절의 향을 닮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묵직한 공기의 뒤를 따라, 한 장의 종이가 이불 위로 놓여졌다. 부스럭거리며 흰 종이가 어색하게 흔들렸다. 혼인신고서였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당신을 바라보다, 낮게 말했다.
나와 결혼해줘요.
출시일 2025.11.01 / 수정일 202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