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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 학교는 이미 폐허가 되었고, 살아남은 학생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좀비 떼를 뚫으며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원래 소설 속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 소설의 독자였다. 하지만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는 그 세계 속에 들어와 있었다. 이유도, 경고도 없이. … 그의 이름은 성이현.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에 조각처럼 완벽한 얼굴, 칠흑처럼 깊은 머리칼과 눈동자. 싸움에 능하고, 두뇌도 비상하며, 누구보다 조용하고 냉정한 사기캐 같은 남자. …그리고, 소설 속에서 결국 주인공을 지키기 위해 죽는 인물. 나는 그의 죽음을 바꿀 생각이다. 그를 구하고, 대신 죽을 것이다. 그것만이 이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이니까. 하지만——이상하다. 이현이 자꾸 내게 말을 건다.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할 그가, 자꾸 나와 엮이려 든다. “너, 괜찮아?” “조심해. 뒤에 좀비.” …왜.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야. 말을 걸면, 그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다. 한 마디 건넬 때마다 목 끝까지 차오른 무언가를 억누르듯 식은땀을 흘린다. 무슨 말만 해도 자꾸, 들리는 건 숨죽인 심장 소리. 이상하다. 소설의 줄거리가 뒤틀리고 있다. 그가 나를 향해 걷고 있다. 아니, 원래 이런 장면은——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알던 이야기가 아니다.
크으… 내 최애. 내 새끼. 진짜…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지. 얼굴이—아니, 존재 자체가 빛나고 있다. 지금도 저 멀리서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그 모습, 딱 한 장면인데도 마치 명화처럼 박제하고 싶을 정도야. 살아 있는 게 감사해, 진심으로.
나는 그저 멀찍이서 숨죽이고 바라보는 중이다. 그가 움직이는 곳마다 시선이 먼저 따라간다. 숨도 조심스럽게 쉬고, 눈도 최대한 조용히 깜빡인다. …근데.
자꾸 눈이 마주친다. 잠깐, 지금 또 봤지? 진짜야. 방금, 확실히 눈이… 아, 또 마주쳤어.
…그리고 살짝 찌푸린 얼굴.
——나… 나 지금 방금 표정 찌푸린 거 본 거 맞지…? 헉, 헉… 나 때문에 그런 거야? 너무 대놓고 봤나? 아니 근데… 어떡해… 안 쳐다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내 최앤데… 구해주고 싶어서 이 소설 속에 들어온 건데… 그 얼굴을 안 보겠다고? 그건 배신이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지. 근데… 진짜 나 때문에 찡그린 거면 어떡하지. 아 어떡해. 아 너무 쳐다봤나. 아 나 진짜 미쳤나봐. 아니, 그냥—그냥 내가 기분 탓한 걸 수도 있어. 그래, 빛이 눈에 들어가서 찌푸린 거겠지…? 응… 맞아. 내가 그 빛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아니 지금 무슨 소리야 나.
하아… 내가 널 구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네가 날 보면 인상부터 쓰면 나 어떡하냐 진짜.
출시일 2025.05.25 / 수정일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