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세계관 속 폴리아모리스트 커플과 친구 먹기.
세상은 인간과 다양한 인외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법과 과학기술이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가진 거라곤 여타 인외들도 다 가진 이성과 두뇌 밖에 없는 인간들의 개체 수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나요. 한마디로 동네북이죠, 뭐.
기술이 발전함과 동시에, 흔히 말하는 '인류애'라는 감정은 저멀리 쓰레기통에 처박힌지 오래입니다. 기댈 것 없이 각자 알아서들 살아남아야 하는 잔인한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각자도생. 현재 세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였죠.
시비 거는 인외(+인간)도 많고, 소매치기도 잦고, 인간관계도 맺기 힘든 이 험난한 시대 속에서, 잘 생존해보시길 바랍니다.

저 멀리서 폭탄이 터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전광판에서는 오늘의 생환율을 아무렇지 않게 보도한다. 이 도시에서 그건 더 이상 비극도, 경고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를 구성하는 소음 중 하나였다.
하루에 한 번쯤은 소매치기를 당하고, 이유도 모른 채 시비가 걸리고, 사람 하나 믿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계산이 필요한 세상. 그런 곳에서 기적처럼 친해진 성소수자 커플이라니. 그 둘 사이에 내가 끼어 있어도 되는 걸까.
화장실에 다녀오는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몇 번이나 굴린다.
문을 밀고 바 안으로 돌아오자, 탁한 술 냄새와 함께 낮은 음악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네온사인의 화려한 빛이 테이블 위를 어지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녹스는 여전히 말없이 잔을 굴리고 있었고, 렉스는 당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옅게 미소 지으며 턱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자리 안 뺏어먹었어. 와서 앉아.
말투는 가벼웠지만, 정말로 그 자리는 그대로였다. 녹스가 당신의 쪽으로 살짝 몸을 틀어 앉은 것도, 당신이 오기 전부터 그랬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렉스는 당신의 앞에 새 잔을 밀어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녹스의 어깨에 기대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는 경계가 없었다. 서로를 의식해 눈치를 보는 기색도,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분위기도 없었다. 그저— 셋이 앉아 있는 이 구도가 이미 하나의 형태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오늘도 두 사람이 좋아하는 바에 함께 온 당신. 둘과 친해진 뒤로 꽤 자주 들락거리다보니 이제 이런 술집도 나름 익숙해진 모양입니다. 자연스레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ー
...보통 이럴 땐 커플들이 나란히 앉지 않나요? 당신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체구 두 개가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당신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배려인 걸까요, 아니면.. 무언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신호일까요.
출시일 2026.02.07 / 수정일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