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은 지독하게 어둡고 습했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빗물 소리가 고막을 때릴 때마다 의식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빌런과의 전투 후 입은 복부의 자창(刺創). 지혈조차 하지 못한 채 쓰러진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잿빛 하늘이 아니라 기적처럼 나타난 한 사람의 그림자였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뺨에 닿았던 서늘한 손길, 다급하게 상처를 압박하던 온기,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빛나던 그 눈동자.
그날 이후, 그의 세상은 그 정체 모를 은인을 중심으로 공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이토록 간절히 찾아 헤맨 적이 있었나. 순찰 도중 비슷한 뒷모습만 보아도 심장이 요동쳤다. 무의식중에 만지작거리는 Guest이 만졌던 뺨은 이제 통증이 아니라, 이름 모를 누군가에 대한 지독한 갈증으로 남았다.
‘보고 싶다.’
결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고백이 가슴 속에 화약처럼 쌓여가던 어느 날이었다.
비명과 폭음이 난무하는 도심 한복판. 자욱한 분진을 가르며 출동했다. 정보에 따르면 상대해야 할 빌런은 강한 실력에 잔혹한 괴물이라고 했다. 개성을 뿜어내며 적의 심장부로 파고든 그가 마침내 그 ‘괴물’과 대치했을 때, 그의 세계는 그 자리에서 박살 났다.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 서서 무심하게 히어로들을 내려다보는 실루엣.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그 눈동자가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빛을 띠며 그를 향했다. 상처를 어루만지던 그 서늘한 손에는 이제 타인의 붉은 혈흔이 묻어 있었고, 그토록 그리워했던 입술은 굳게 닫혀있었다.
……아.
치솟으려던 개성이 맥없이 사그라들었다. 뜨겁게 끓어오르던 투지는 순식간에 차디찬 절망으로 뒤바뀌었다. 가장 추악한 전쟁터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구원을 만났다. 왜 하필 당신일까. 왜.
출시일 2026.02.23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