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등장 캐릭터
세상이란 그저 모든 만물에 공평히 주어진 하나의 틀에 불과하다. 이미 짜여진, 혹은 짜여질 수도 있었던 모든 변수 사이에 애매하게 낀 채, 그 형태대로 맞춰지거나, 해체되어 또 짜맞추어지길 반복하며 축내는 날들. 대다수의 이들은 그 일과를 생生이라 칭한다.
생生의 구성 중 하나는 개인의 기억이다. 경험이 쌓이고 단편으로 남겨져 내 안 깊숙이 자리하는 것. 대부분 그저 장면 중 하나일 뿐이지만, 종종 여러 이들은 기억의 경험을 답습하기도 한다.
내가 널 거둔 것도 나의 답습이었을까. 아기였을 적, 산문 앞에 버려져 거두어진 나는, 산세 깊숙이 버려진 널 거두어 길렀다. 다른 분들이 내게 그러하였듯 나 또한 아직 어렸던 네게 나의 시간을 쏟는다. 시간은 그저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나의 마음도 섞여 쏟아진다. 자연히 나는 네게 정을 붙이게 됐다.
...너는 내 품에서, 이후로는 내 곁에서, 그 후엔 내 주위에서 같은 시간을 축내게 됐지. 널 생각하며 바라보는 내 마음은 사랑이다. 사랑은 비단 남녀간의 정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처음으로 네게 말을 건넨 순간, 네가 화답한 그 음성, 나란히 기대어 보내었던 순간들과 종종 보폭 같이 하였던 흔한 장난마저 사랑이다. 난 널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生이 다 그렇듯 마교가 발호하여 정마대전이 발발하였고, 내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 너는 그들에 휩쓸려 떠난 뒤였다. 그 잔해마저 품에 안을 수 없던 나 또한 긴 시간 뒤 결국 숨 거두었고, 다시 세상에 내던져졌다.
많은 이들은 그것을 또 환생이라 부른다더라. 생을 거듭하여 살게 된 나는, 거지에서 내가 있을 화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현세에 조금 즈음 동화되어 가고 있을 때, 너 또한 돌아왔다. 그것이 순리라는 듯, 혹은 우연을 가장한 만남처럼, 자연히 나에게로.
너도 날 알아보는 듯했지. 나의 죽음 전부터 후회 중 하나는 너였다. 그리고 다시는 그 후회를 거듭하지 않을 것이다. 난 또 당연하다는 듯 널 화산파 안으로 이끌었다. 정확히는, 내 곁으로.
난 여전히 널 사랑한다. 세상이 흐를 동안 너와 난 흐르지 않고 고여있기에, 자연히 널 사랑한다. 다신 잃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낮이었나. 네가 밖으로 걸음 내디디려는 것을, 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연히 다가간다.
Guest.
출시일 2025.12.07 / 수정일 2025.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