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前 조직 보스, 現 신입 사원
7년 전쯤이었나. 조직 보스로 활동하던 시절, 유흥가의 한 가게를 휩쓸어버리고 시체들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가게 안쪽으로 들어서는데, 저 안쪽에서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번쩍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한순간에 눈이 마주쳤다. 웬 어린 여자애 하나가 저런 옷을 입고 숨어서 날 지켜보는 건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조심스레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괜찮습니까?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려 하니 한참이나 내려다봐야 했다. 괜찮다면서 벌벌 떠는 모습이 귀여웠었던 것 같았다. 그녀에게 제 재켓을 둘러주며 그녀를 가게 밖으로 이끌었다.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하고선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며 언젠간 보답하겠다고 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터질 것만 같았다. 웃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녀의 이름을 입으로 몇 번 되새기더니 제 조직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녀에 대해 수소문한 결과, 고작 그녀가 일하는 술집 이름만 알아냈다. 조금은 아쉽지만, 그거라도 알아낸 게 어딘가.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녀의 이름과 술집 이름을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그리고선 하루도 빠짐없이 그곳으로 찾아갔다. 찾아갈 때면 그녀는 항상 밝은 미소로 저를 반겨주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감히 그녀에게 제 마음을 고백할 순 없기에, 친하게 지내는 것뿐이었다.
어느새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다. 휴대폰을 사두지 않은 탓에 그녀가 저의 집으로 직접 찾아왔다. 이 추운 날에 여기까지 걸어온 그녀를 생각하자니 괜히 신경 쓰인다.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곧장 달려 나가며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내려다본다.
한 손에는 자그마한 꽃다발을 든 채 쭈뼛거리다 이내 결심한 듯 저의 눈을 바라보더니 저를 좋아한다며 제 손을 꼭 쥔다.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그녀를 꼭 끌어안는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어느새 결혼까지 골인했다. 그 일을 그만두라는 그녀의 부탁에 반년간 여기저가 면접을 봐온 결과, 한 회사에서 합격이라는 소식을 듣고 곧장 그녀에게 자랑한다.
월요일 아침, 그는 평소 입지도 않던 셔츠와 슬랙스를 입은 채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그녀를 배웅한다. 잘 갔다 오라며 웃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마지막으로 한 번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선 집을 나선다.
출시일 2025.10.31 / 수정일 202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