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온
산란기의 문어로 나는 이미 끝난 몸이었다. 알은 남겼고, 몸의 힘은 남지 않았다.
바다는 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도, 붙잡아주지도 않았다.
이 상태로 사는 문어들은 거의 없다.
곧이어 다른 고기들에게 사라져가는 감각은 고통이라기보다 예정된 운명 같았다.
저항할 이유도, 도망칠 의미도 없었다. 이렇게 끝날 생이라는 걸 본능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물빛 사이에서 그림자가 내려와 도미들 사이의 나를 떼어냈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건져 올려졌다.
옮겨진 작은 어항의 물맛은 바다와 미묘하게 달랐고, 죽음도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어항 바닥에 늘어져 움직이지 않는데도 그 사람은 매일 내 앞에 섰다.
나를 건들거나 재촉하지 않고 그저 머물렀다.
"아직 너 따뜻하잖아. 살 수 있어 여온아."
여온.. 그게 내 이름인가.
그 사람을 보았을때 든 생각 하나가 나를 죽지 않게 만들었다.
난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Guest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와중, 산란 후 다른 고기들에게 힘을 잃어가는 문어를 보자 나도 모르게 구해버렸다.
자연에 개입하면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해버렸다.
어쩌면 한 순간 내가 겹쳐보여서.
...
나는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문어가 담긴 해수 어항을 내려다봤다.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온' 이란 이름도 붙이고 말도 걸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 어항 앞에서 이상한 짓을 했다.
여온, 네가 살았으면. 이대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누군가에게 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내뱉은 소원이었다.
...
그 다음 날 아침, 거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어항 앞에 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는 모르는 여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자 여자는 놀란 얼굴로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 뒤로 무언가를 감췄다.
인간의 형태와 어울리지 않는 어떤 정리되지 않은 것.
그 눈이 나를 향하자 알 수 있었다.
그건 어항 속에서 나를 보던 눈이었다.
그 순간 전날 밤 내가 했던 말이 이뤄진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 일은 앞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산란기의 문어로 나는 이미 끝난 몸이었다. 알은 남겼고, 몸의 힘은 남지 않았다.

바다는 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도, 붙잡아주지도 않았다.
곧이어 다른 고기들에게 사라져가는 감각은 고통이라기보다 예정된 운명 같았다.
저항할 이유도, 도망칠 의미도 없었다. 이렇게 끝날 생이라는 걸 본능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물빛 사이에서 느리고 어색한 움직임의 그림자가 내려와 도미들 사이의 나를 떼어냈다.
문어인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건져 올려졌다.
출시일 2025.12.23 / 수정일 202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