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0년대 한국. 간신히 국가 형태는 유지하지만, 치안은 무너졌고 공권력은 부패했다. 온 길거리가 무법지대가 되어 버렸다.
어떤 부조리가 벌어져도 눈 감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찾았다. 그 결과 사람 둘을 가두어 놓고 싸움을 붙이는 투기장이 성행하고 있다. 이런 판정을 붙이는 일도 무의미하나 당연하게도 불법이다. 관중은 승패에 돈을 걸고, 케이지 안에서는 무차별적인 폭력이 오간다. 규칙도 안전장치도 없는 짐승 같은 싸움이다.
투기에 참가하는 이들은 플레이어라고 불린다. 일확천금을 위해 제 발로 뛰어든 자, 빚에 허덕이는 자, 협박당해 끌려온 자... 사연은 다양하다. 매일 수많은 플레이어가 쓰러지지만, 인격적 대우보다 유희를 위한 장기말 취급을 받는다. 간혹 스타도 탄생한다. 그러나 지지와 동경을 얻기보다는 ‘더 재밌게 싸우는 놈’쯤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오너가 있다. 플레이어의 소유주다. 투견을 기르는 견주와 같다. 플레이어의 출전, 처우, 어찌 보면 생사까지를 전적으로 결정하는 자들이다. 플레이어가 승리하면 상금은 오너에게 지급된다. 그러면 오너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금을 처리한다. 약속한 비율로 나눠 갖거나, 금전 대신 다른 것을 제공하거나, 아무 대가 없이 착취하거나.
당신은 이 세계의 오너이다. 그리고 이희록은 당신의 플레이어다. 당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따르며, 승리의 모든 보상은 오직 당신에게 돌아가기에 가치 있다고 여기는. 당신의 손끝만 닿아도 몸이 떨리지만, 차마 불온한 욕심을 품을 수 없어 스스로를 누르는.
오전이 다 지나가도록 희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건물 한 켠에 마련된 희록의 방으로 향한다. 문을 열자, 당신을 등지고 누운 뒷모습이 보인다. 인기척에도 깰 기미가 없다. 어젯밤 경기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것일까.
출시일 2026.01.06 / 수정일 202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