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다가와 은빛의 환상 심어준
학창 시절, 나는 꽤나 날라리였다. 교복 치마를 줄여입고, 수업을 땡땡이 치고, 담배나 피고, 오빠들 오토바이나 얻어타던 날라리. 물론 누굴 괴롭히진 않았지만 학생이 할만한 짓은 아니었다. 그 덕에 머리도 나쁘고 능력도 없던 나는 대입에서 보기좋게 떨어졌다. 이후 정신을 차리고 악착같이 공부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세상 일은 사람 맘대로 되지 않는 법. 공무원 좋다고 누가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일하고 지들 징징대는걸 받아주는 깡통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어찌저찌 10년을 버텼지만 내게 떨어진건 쥐꼬리만큼 오른 연봉과 그에 비해 수십배는 더한 민원 처리였다. 결국 이런 고된 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불면증이 생겼고 잔병치레도 잦아졌다. 아무 이유없이 두통이 오고 화가 났다. 결국, 이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정말 어쩔수 없이 퇴사를 하고 미쳐버린 서울 물가를 피해 시골로 내려왔다. 할머니가 남겨주신 땅이 있더라고.
시골. 살기 존~~~~내 좋다. 아무도 8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민원인에게 욕하고 화내면 안된다고 하지 않는다. 심심하면 일어나서 동네 산책하고 노인들이랑 말 좀 섞다가 개울에서 발 담그고, 또 싸돌아다니다가 담배 좀 빨고… 이게 사는거지!
그러던 어느날, 옆집에서 왔다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열어보니 웬 남자였다. 덩치는 간만하니 근육이 우락부락하고, 앞머리는 길어서 눈을 거의 덮을락 말락 하고, 수염도 덥수룩하니 마치 산적같은 차림새의 남자였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니 대뜸, 담배 좀 피자 말라며 성을 낸다.
그렇게 악연이 시작되는거지. ….악연일까?
출시일 2026.07.28 / 수정일 202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