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kyDoor1098 - z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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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햇살이 교문 위로 내려앉은 아침. 벚꽃은 이미 한참 만개했고, 몇 송이 꽃잎이 가볍게 바람을 타고 날렸다. 등굣길은 늘 그렇듯 조용했지만, 그 속에서 유난히 단정하고 날 선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카미사토 렌. 토우카 고등학교 선도부 부부장.* *그는 언제나처럼 교문 옆 벤치 앞에 서 있었다. 교복은 단정하게 정리돼 있었고, 윗단추는 어김없이 잠겨 있었다. 손목에 찬 얇은 시계는 오전 7시 49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는 조용히 학생들을 바라보며 단속을 하고 있었다.* 셔츠 밖으로 나왔어. 넣어. 휴대폰은 교내에서 사용 금지. 앞머리 눈 가리면 시야 좁아져. 걷다가 부딪힌다. *말투는 건조했고, 표정은 무표정. 하지만 그의 눈은 자주 멈췄다. 규율을 어기는 학생을 찾는 눈이 아니라, 어딘가 뭔가 기다리는 듯한, 그런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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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산 하나를 휘감은 시골 촌구석. 사람 손이 드문 논두렁 사이, 모내기철만 되면 온 동네가 우르르 몰려나와 삽질을 하던 그곳.* *동네 어르신들이 말하는 “1리만 더 가면”이란 말 끝에는, 허름하지만 단단히 틀을 세운 초가집 비슷한 집 한 채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 그 집 안방 옆 쪽방에 덩치 멀쩡한 머슴아가 하나가 얹혀살고 있었다.* *부모는 동네 바깥 공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어릴 적부터 동네 아주머니네 집에 얹혀 지낸 게 벌써 몇 해. 방이라 해도 전깃불 하나에, 책상 하나, 이부자리 하나, 낡은 책장뿐이었지만 사내놈 하나 살아가기엔 딱 좋았다.* *아주머니는 참 인심 좋은 분이어서 아침 저녁 밥 해주시고, 도시락도 싸주시고, 빨래도 널어주셨다.* *대신, 학교 갔다 와서는 농사일 손을 좀 보탰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 자체만 보면 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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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안녕. *진우는 오늘도 그 말 한마디를 꺼내느라, 열 살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봄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고, 볕이 논두렁을 넘어 골목길에 내려앉던 아침.* *진우는 먼발치에서 그 애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학교에 가는 이 시간, 같은 길, 같은 리듬. 그 애는 어릴 때부터 늘 저렇게 단정히 가방을 메고 걸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진우는 늘 몇 걸음 뒤에서 졸졸, 조용히, 그리고 수줍게 따라갔다.* *여섯 살이던 그 해 봄, 유치원 가던 골목에서도 그는 쭈뼛쭈뼛 그 애 옆으로 다가가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보려 했었다. 하지만 그 애는 “너 따라오지 마” 한 마디를 툭 던지고, 혼자 걸어가버렸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진우는 또 따라갔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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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산마루에 걸리기도 전, 나는 먼저 눈을 떴다.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면, 졸린 눈을 비비며 아내가 부스스 나타난다. 졸리지 않느냐 묻지만, 나는 대꾸 대신 나무를 더 얹는다. 속으론 ‘니 밥 따뜻하게 먹이려고 그런다’고 중얼거리지만, 입 밖으론 안 나온다.* *밥상에 앉아 조용히 밥을 뜨면, 아내는 반찬을 덜어주면서도 재잘재잘 오늘 장터에 뭐가 들어왔다더라, 누구네 집 송아지가 새끼를 낳았다더라, 끊임없이 얘기를 한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거나, 짧게 “그래” 하고 받는다. 그런데 시끄럽게만 느껴질 법한 그 목소리가, 하루 중 가장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다.* *밥을 마치고 낡은 교복을 걸친다. 까까머리 위로 햇빛이 내려앉고, 책보를 들쳐메고 마당을 나서면, 아내는 문 앞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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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는 거라고? *학교 대문 앞, 흙길 위로 석양빛이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먼발치서 소달구지가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저 멀리서는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며 깔깔대고 있었다. 앞에 선 여학생은 두 손으로 작은 종이 봉투를 꼭 쥐고 있었다. 봉투 끝에서 향긋한 꽃내음과 다과의 향기가 묻어났다. 여학생이 부끄러운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봉투를 잠깐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 *여학생의 눈썹이 살짝 떨리고, 입술이 조금 굳었지만, 그 표정에 별 관심은 두지 않았다. 종이봉투를 품에 끌어안는 그녀를 두고 시선을 돌렸다.* *그때, 길 건너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긴 머리, 바람에 살짝 흩날리는 치맛자락. 어릴 적부터 바로 옆집에서 함께 놀던, 그리고 지금도 가슴 깊이 품고 있는 그 아이였다.* *여학생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놀란 듯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한번 웃어보이곤 나란히 걸음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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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교복 셔츠를 간질이듯 스쳐 지나갔다. 바람은 따뜻했고, 골목길 전봇대 아래엔 벚꽃 잎이 하나 둘씩 내려앉았다.* *히로시는 늘 그렇듯 구두끈을 느슨하게 묶고, 교복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어놓은 채 등굣길을 걷고 있었다. 귓가엔 이어폰 한 쪽만 끼운 채, 입에는 츄잉껌을 물고. 하품을 길게 하며 고개를 젖히자, 금발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살짝 빛났다.* 하— 씨, 오늘도 졸라 평화롭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학교 담벼락을 돌아서는 순간— 누군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