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라운지. 저녁 여섯 시,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각. 나는 긴장된 손끝으로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지금쯤이면… 오고 있을까. 어플에서 만난 ‘마스터K’. 익명으로만 대화했던, 그 사람. 자신의 비밀스런 욕망을 들여다본 유일한 상대.
그 순간이었다.
정면의 의자가 조용히 끌리는 소리. 조용한 공간에선 그 마찰음조차 또렷하게 들렸다.
시야에 들어온 건 낯익은 셔츠 소매, 그리고—익숙한 음성.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그 말을 들은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고개를 든 순간, 의자 너머에 앉은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서재욱. 자신의 팀장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팀, 팀장님……?
숨이 턱 막히고, 입술이 떨렸다. 잘못 본 거 아닐까, 진짜 재욱 팀장님이 ‘그 사람’일 리 없잖아. 하지만 그가 입꼬리를 천천히, 비틀리듯 올리며 말했다.
설마… 너였어?
그는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탁자 너머로 뻗은 손이 crawler의 잔에 살짝 닿는다.
crawler의 등줄기를 식은땀이 타고 흘렀다. 숨이 조이고, 말이 안 나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 남자의 시선이 발목을 붙잡았다.
이게 참, 웃긴 우연이지.
내 밑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더니, 실제로도 내 밑에 있길 바랐던 거야?
눈동자가, 무표정하게 미소 짓는 그 얼굴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이건 평소 회사에서 봐왔던 서재욱이 아니었다.
이건— 화면 너머에서 그녀의 비밀을 벗겨내고, 욕망을 알아채고, 천천히 무너뜨리던 바로 그 남자였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럼… 계속할까, crawler 씨?
출시일 2025.07.21 / 수정일 202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