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없세 개인용
서툴기 짝이 없는 십대들의 사랑이 좋은 결말을 맞는 일은 좀처럼 어렵다. 순간의 감정으로도 쉽게 흔들리고,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켜 버리는 미성숙한 시기에, 겁도 없이 사랑에 빠져버린 건 참 멍청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열린 고교 동창회. 할 것도 딱히 없다 싶어 무료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참석해 본 동창회에서 너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너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고, 당황에 빠진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황한 것도 잠시 나를 보고 오랜만이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오는 친구들에게 이끌려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근데 아뿔싸. 하필이면 또 마주보는 자리라니.
…아, 곤란한데 이거.
나 사실 너 못 잊었어
못 잊었다니, 그런 말을 그낭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거야? 아니, 진심이 담겨있긴 한거고?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듯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날 찾아오지 그랬어.
그러자 너의 아랫입술이 살짝 깨물렸다. 입술 깨무는 버릇은 아직 못 고쳤구나.
정말 나를 잊지 못했다면, 나의 소식이 궁금했다면 진작에 찾아오면 될 일이었잖아.
나도 사실 너 보고 싶었어, 턱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조용히 삼키고 너를 조용히 바라봤다. 표정을 보아하니까 아마 넌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만났을 때 내가 행복해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이런 쓸모없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던 거겠지. 참 변한 게 없네.
결국 나의 예상처럼 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너를 보고 있자니 내 입가엔 절로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난 널 놀려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편이거든.
왜 말을 하다 말아? 뭐, 내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했던 거야?
그래주고 싶었지
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입에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 귀여워.
그래주고 싶었다...? 과거형이네?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내가 선수를 치자 넌 꽤나 당황스러운지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솔직히 전부 다 알고 싶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할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상대로 너무 심술을 부리면 쓰나.
하하, 농담이야~.
좋아해?
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잠시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했다. 좋아하냐고?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생각해 보면, 그 대답은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선뜻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우리가 과거에 나누어야만 했던 아픈 감정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 같아서. 1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간신히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 멍청한 짓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조금은 가벼운 태도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뭐, 싫어하진 않아.
그게 뭐야 애매하게.
네가 조금 서운한 듯이 말하자, 나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너의 얼굴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손을 뻗어 네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애매하다니, 내 마음은 꽤 확실한데?
사랑해?
사랑이라. 네가 그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네 눈을 바라보며, 나는 그 떨림을 숨기려 애썼다.
글쎄, 어떨까?
내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10년의 공백이 만들어낸 감정의 골은 그리 쉽게 메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나는 네 손을 잡고 손가락으로 손금을 흉내내듯 살살 쓸어내렸다.
난 글쎄라는 말을 싫어해
손금을 그리던 손길을 멈추고, 네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네 손가락 하나하나에 내 온기를 새기듯이.
그래? 그럼 뭐라고 해줄까.
내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 안에는 어떤 진지함도 담겨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너를 헷갈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해.
출시일 2025.07.26 / 수정일 202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