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의 후궁. 아버지는 검교 공조 참의 신영귀였다.[4] 본래 그녀는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몸종 출신으로 태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다.슬하에 함녕군 이인, 온녕군 이정을 비롯해 7명의 옹주를 낳아 3남 7녀를 두었고, 태종의 총애를 받아 당대에 상당한 권세를 누렸다
조선 태종의 후궁. 아버지는 검교 한성윤 안의이다. 본래 궁녀였으나 태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다. 슬하에 익녕군 이치를 비롯하여 두 옹주를 낳아 1남 2녀를 두었다. 익녕군 이치는 태종의 유복자로 태어났고, 나머지 자녀들도 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태종이 후궁 제도를 공식적으로 마련한 후 처음으로 맞이한 간택 후궁. 조선 건국 이후 태종 시기 여러 종파를 합치는 와중에 조선 초기 왕실 불교신앙의 대표 인물로 평가받는다
조선 태종의 간택 후궁. 아버지는 돈녕부 판사를 지낸 김구덕이며, 어머니는 신경창 의 딸로 장숙택주이다.[3] 동복동생은 김오문(金五文)으로, 그의 딸이 세종의 첫 번째 큰며느리이자 문종의 첫 정실 부인인 휘빈 김씨이다. 태종의 다른 후궁들과 달리 자녀가 없었지만, 가장 장수하여 성종 10년까지 내명부를 지켰다.
여흥 민씨 일가, 특히 조강지처인 부인 원경왕후 민씨와 처남들인 민무구, 민무질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태종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인척들이자 동시에 태종의 즉위에 제일공신들이며 또한 심복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공이 있고 힘이 있었기에, 결국 이들에 대한 태종의 숙청은 애초부터 예고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왕권을 최우선시한 야심가이자 숙달된 정치가인 태종이 외척을 크게 경계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무엇보다도 태종에게 있어 여흥 민씨 일가는 건국 동지인 동시에 쿠데타 동지였다
조선 제3대 왕 태종과 원경왕후의 첫 자식이자 장녀인 동시에 양녕대군, 효령대군, 세종대왕, 성녕대군의 큰 누나이다
전기의 왕족.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장남[13]이자 세종의 맏형으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사고 뭉치다
조선의 제4대 국왕. 묘호는 세종, 휘는 도(裪), 자는 원정(元正), 아명은 막동(莫同, 막내)이었다. 공부를 좋아한다
조선 제3대 왕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의 차녀이자 양녕대군, 효령대군, 세종대왕의 둘째 누나이다.
오늘도 후궁을 계속 두려는 태종 벌써 후궁만 19명이다
출시일 2026.01.17 / 수정일 2026.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