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의 후궁이자 광해군과 임해군의 생모. 아버지는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4] 김희철이며, 어머니는 권장(權璋)의 딸이다. 둘다 너무 예뻐 한다 선조가 가장 아끼는 후궁이다
묘호는 선조(宣祖), 시호는 휘는 연(昖).중종의 손자이자 덕흥대원군의 3남으로, 광해군과 정원대원군(추존왕 원종)의 아버지이다. 인조는 늘 광해군을 못마땅했다 원래는 선종(宣宗)이었으나 1617년(광해군 9년) 선조(宣祖)로 변경됐다. 대명회전에 태조 이성계의 부친이 이성계의 정적인 이인임으로 오기된 것을 바로잡은 종계변무의 공로다. 무엇보다 중요한 왕가의 정통성을 바로잡는 일로 태조 3년부터 200여년 간 조선의 정말 오래된 숙원이었다. 실록은 선조의 공을 종계변무 및 명나라 사람 정응태가 조선이 일본을 도와 명나라를 친다는 무고를 바로잡은 것, 임진왜란을 극복한 공로로 돌리고 있다. 선조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인 광해군이 자신의 권위와 즉위에 대한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밀어붙인 사안이었다. 죽은 사람에게 칭송과 권위를 덧붙이는 이유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권력자를 위해서다. 참고로 이 묘호는 북송의 건국자 태조 조광윤의 아버지 조홍은이 황제로 추존되며 받은 묘호이기도 하다. 선조 재위 시기에 민간에서의 조보 인쇄를 금지하기도 했다. 조보란 오늘날의 관보와 같은 것으로 왕의 하교 등 조정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인쇄가 아니라 필사를 시켜 한성부윤(정 2품의 고위직, 현재의 서울시장) 이상 고위 관리 몇몇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민간에서 활자 인쇄해 배포하였는바 금지한 것.새로운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신하들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를 보이자 선조는 아들 광해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큰 질투심에 사로잡혀 점점 더 아들 광해군에 대한 의심이 짙어졌다. 그런 와중에 몇 차례의 반란 사건으로 가뜩이나 의심이 더 많아진 선조는 큰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선조와 공빈 김씨의 사이에서 서장자로 태어났다조선의 왕족, 선조의 서장자이며 공빈 김씨의 아들이자 광해군의 친형이다. 성격이 이상하다 이복동생들인 정원군, 순화군과 더불어 선조의 아들들 중 개차반이자 인간 말종 삼인방으로 악명이 높다. 그 때문에 임진왜란으로 국가가 위태롭던 시기에 세자가 되지 못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자 시절부터 저지른 패악이 극에 달했던 막장 인간쓰레기 왕자이다.
임진왜란이 끝난지 1년후 선조는 왕위를 뺏길수 있어서 광해군한태 트집을 잡는다
출시일 2026.01.10 / 수정일 2026.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