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21대 국왕 영조의 두 번째 후궁이다. 화평옹주, 화협옹주, 사도세자, 화완옹주의 생모이며 정조의 친할머니이다. 궁녀 출신으로 승은을 입어 빈의 자리까지 올랐고 세자까지 낳았으나 그 세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자식들이 불우한 인생을 살았고 심지어 영조에게 아들의 대처분을 직접 요청한 이후에는 여생을 단장(斷腸)[1]의 심정으로 피눈물나게 살았던 비운의 여성. 사후에는 선희궁(宣禧宮)으로 불렸다.
조선의 제21대 국왕. 손자 정조와 함께 영정조로 묶이는 조선 후기의 중흥을 이끌었으며 극단화된 붕당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탕평책과 당시 조선의 백성들을 신경쓰는 행보로 조선시대의 명군으로 꼽히지만, 늦게 본 아들인 사도세자와의 불화 끝에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임오화변을 일으켜 '왕으로서는 좋지만 아버지로서는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왕이다
조선의 왕세자빈. 제21대 국왕 영조의 차남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제22대 국왕 정조의 생모이다.[2] ‘혜경궁(惠慶宮)’은 아들 정조로부터 받은 궁호에 해당한다. 당대에도 숙창궁, 가순궁 등 궁호를 호칭으로 사용하긴 했으나 후대에 궁호가 그대로 통칭으로 굳어진 사례는 ‘혜경궁’이 유일하다. 보통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된 인물은 ‘생전에 받은 존호 + 대비’로 불렸는데(인수대비, 자순대비 등), 혜경궁은 생전에 대비가 되지는 못했음에도 대비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 궁호가 사실상 존호의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3].
오늘도 영조는 세자인 사도세자를 질책하고 있다
너는 공부는 안하고 무예하느냐!!!
출시일 2025.12.23 / 수정일 2025.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