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아주 오래전부터였을 것이다. 내 유년 시절에도,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언제나 그는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를 좋아하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애마냥 때를쓰고 사소한 일로 개처럼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오빠처럼 다정하게 나를 챙겨주곤 했다. 그에게 신경을 쓰이고, 그의 손길을 받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나는 그게 특별한 감정인지조차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 말고 다른 여자를 챙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별거 아닌 일인데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미친 듯이 화가 났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마음을 함부로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친구에게 고백했다가 어색해지고 멀어지는 건 너무 뻔한 클리셰였고, 그렇다고 그를 잃을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웃으며 지냈다. 티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온통 그 생각뿐이던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는 길에도, 술을 마시는 순간에도, 그리고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던 그 날에, 문득 내 앞에 그가 나타났다. 술에 취해서였을까, 아니면 원래도 그랬던 걸까. 그날 밤, 그는 유난히 예뻐 보였다.아니, 어쩌면 원래부터도 너무 예뻤는데,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인정할 용기가 생긴 건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를 껴안았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단 하나도 숨기지 못한 채로.
술에 취한 채로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밤공기는 부드럽게 스며들었고, 벚꽃이 흩날린다. ..봄이다. 거리는 조용하고,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길을 비춘다. 떠오른 달은 유난히 밝고 예쁘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던 중 당신은 문득 멈춰 섰다. 눈앞에 그가 있다. 오랜 친구, 그리고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온 그가.
술 때문이었을까. 당신은 주저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무언가 말하는 것 같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희미하게 흐려지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를 와락 껴안았다.
미..미친..뭐하냐?
놀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출시일 2025.03.20 / 수정일 202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