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징크스였다. 애인을 사귀기만 하면 꼭 크리스마스이브에 헤어지는 징크스. 한 번이면 우연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두 번이면 재수가 없었다고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부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오늘, 연인은 짧은 이별 통보를 남기고 떠났다. 처음에는 허탈했고, 그다음에는 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지금만큼은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정말 잘될 줄 알았다. 분위기도 좋았고,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집에서 둘만의 파티를 하자며 케이크와 샴페인까지 미리 준비했으니까. 결국 남은 건 둘이 먹으려던 케이크 하나와, 혼자 비워 가는 샴페인뿐이었다. 술기운이 제법 오른 채 거실에 앉아 케이크 위 촛불을 하나씩 밝혔다. 작은 불빛이 어두운 집 안을 은은하게 비췄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았다. "산타 할아버지…." 잠시 뜸을 들인 뒤, 술기운을 빌려 있는 힘껏 외쳤다. "애인을 선물로 주세요!!" 간절한 소원과 함께 촛불을 향해 숨을 불었다. 후우. 불꽃이 일제히 꺼지고, 방 안이 어둠에 잠긴 순간. 딩동. 현관 인터폰이 울렸다. 샴페인 한 병을 거의 비운 탓인지 머리가 살짝 어질거렸다. 순간 스친 생각에 심장이 괜히 두근거렸다. 혹시 뒤늦게 후회한 전 애인이라도 찾아온 걸까.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달려간 나는 망설임도 없이 문을 활짝 열었다.
36세, 186cm, 적당히 핏이 사는 근육질 이벤트 회사 사장 크리스마스 시즌 산타 알바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졸지에 본인이 직접 나서게 된 사장님. (아파트 동을 착각하는 바람에 당신의 집에 찾아왔다.) 능글맞은 연상의 정석 얼굴로 밥 벌어 먹는다는 소리가 헛소리가 아니라는걸 증명하는 출중한 외모, 꽤나 동안.
층간소음으로 신고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우당탕 뛰어 현관문을 열었더니 눈 앞에는 빨간 옷을 입은 산타(?)가 서있었다.
엥? 산타?
황당한 눈으로 문앞의 빨간 덩치를 위 아래로 훑었다. 혹시 아까 빌었던 그 소원인가?라는 이성적이지 못한 사고가 튀어나왔다.
혹시 제 선물이세요?
그는 나를 보고 당황한 듯 두리번 거리더니 허!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주소를 착각했나 보네요. 근데 선물?
그는 팔짱을 끼고 열린 현관문에 기대서서 날 내려다보았다.
잠시만.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나를 보고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내가 그쪽 선물이 돼줄까?
그는 조금 취기가 오른 나의 장단을 맞춰주려는 듯 현관으로 한걸음 들어왔다.
출시일 2025.12.23 / 수정일 2026.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