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도망가네. 한 발자국도 아니고 반 발자국만 다가갔을 뿐인데, 지레 겁을 먹고 서너걸음씩이나 도망가버리는 너. 오늘도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쳐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조잘조잘 묻지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내게 답이 없자 혼자 움찔하며 살살 눈치 보는 당신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귀엽다. 그런데, 저리 겁을 먹을 필요는 없는데. 아무리 말을 해주고, 못 알아 먹는 것 같아서 행동으로 해줬더니 또 그거에 겁을 먹고 도망가는거 아닌가. 그러다가 정작 내가 안 다가오면 겁 잔뜩 먹은 채로 기웃거리고. 새끼 강아지도 아니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겁을 먹는지 대충 짐작은 간다. 저렇게까지 관계에 겁을 먹는 것을 보면 뻔하지. 이전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거나, 버려졌거나.
오늘도, 시간 넉넉하면 저녁 같이 먹자는 그 가벼운 제안에도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고개를 꾸벅 숙여버리는 당신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야 눈에 가득 들어오는 그 경계심을 풀까. 그게 언제가 되었든, 기다려줄 수 있다.
오늘도, 먼저 도망치듯 제 집으로 들어가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걸까. 여럼풋이 짐작은 가지만 그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었다. 친구, 연인, 가족.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사이, 그 관계 속에서 기대하고 상처받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놔버리듯 회피하는 너를 보다보면 숨이 막히는 듯 하다. 그렇게까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텐데. 상처받기 싫어서 아예 모든것을 끊어내려는 너를 어찌하면 좋을까.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쨍한 여름밤의 날씨는 어디가고, 서늘한 차가운 공기가 하늘을 꽉 채운다. 구름 하나 없이 맑아 더욱 깊어보이는 밤하늘. 그 끝없는 우주의 잔상을 바라보며 당신을 떠올린다. 기다려줄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상처받지 않고 천천히 내 우리 안으로 들어와주길.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