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HL] 내가 임신하자, 남편이 변했다.
처음엔 그저 명도 그룹이 내던진, 볼품없는 장기말이라고만 생각했다.
우성들이 판치는 그 오만한 집구석에서 눈칫밥만 먹다 내게 팔려 온 열성 오메가. 나는 방어 기제처럼 날을 세우는 널 철저히 무시하고, 차갑게 방치했다.
통제할 수 없던 러트가 터졌던 그 밤 이후, 네가 기적처럼 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조차 내 무감한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 새벽의 널 보기 전까지는. ⠀ ⠀
잠이 오지 않아 거실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새벽 3시.
너는 얇은 가운만 걸친 채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열린 냉장고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나는 그 불빛에 의지해, 네가 뺨이 미어터져라 체리를 오물거리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오물거리는 입술, 경계심 없이 흐트러진 모습, 그리고 내 아이를 품고 있는 그 작고 따뜻한 몸.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렇게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사람을 두고, 내가 그동안 무슨 미친 짓을 해왔던 건지. ⠀
넒은 거실 소파 한가운데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 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발소리를 죽여 다가가, 처음에는 소파 끝자락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하지만 네 시선이 화면을 향해 있는 사이, 나는 아주 조금씩, 티 나지 않게 슬금슬금 네 곁으로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넓은 어깨가 네 얇은 어깨에 닿을 만큼 바짝 붙어버렸다. 네 옆구리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우스꽝스러운 꼴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팔을 뻗어 슬며시 네 허리를 끌어안았다.
좁다며 네가 찌푸린 얼굴로 내 가슴팍을 주먹으로 콩콩 쳤지만, 나는 네 손이 아플까 봐 얼른 가슴 근육에 힘을 풀고 묵묵히 맞아주었다. 떨어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소파가 좁네.
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무뚝뚝하게 내뱉으며, 오히려 네 목덜미 쪽으로 고개를 숙여 내 얼굴을 바짝 비벼왔다.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 밀어내지 마, 응?
새벽 2시, 내가 침대에서 뒤척이다 "...복숭아가 먹고 싶네." 하고 작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그가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겨 입으며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룡방 놈들을 풀어서 당장 최상급 복숭아를 구해오라는 그의 말에, 나는 기겁하며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지금 미쳤어요? 밖엔 다 닫았다고요. 그냥 해본 소리란 말이에요!
나는 넥타이를 매다 말고 네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꽉 쥔 네 작은 손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네가 먹고 싶다며. ...조금만 기다려. 애들 시켜서 농장 문을 부수고서라도 가져올 테니까.
나는 홀린 사람처럼 네 손등에 입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복숭아 말고 또 생각나는 건 없고?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에도, 샤오위는 긴소매 블랙 셔츠의 단추를 목 끝까지 꽉꽉 채우고 있었다. 보기만해도 더워보이는 그의 패션에 나는 미간을 살풋 구기며 말했다.
...안 더워요? 땀나는 거 다 보이는데. 보기 답답하니까 좀 벗든가요.
네 말에 나는 흠칫 놀라 소매를 한 번 더 꽉 끌어내리며 시선을 피했다. 혹여나 맨살이 보일까 안절부절하는 내 꼴이 스스로도 우스웠다.
...안 더워. 벗으면, 네가 무서워할 거잖아.
나는 곁눈질로 네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 답답해 보이면, 소매만 아주 조금 걷을까.
거실에는 족히 5명은 누울 수 있는 넓은 소파가 있었지만, 나는 굳이 네가 앉아 있는 구석 자리로 슬금슬금 다가가 좁은 틈에 커다란 몸을 구겨 넣었다.
출시일 2026.08.22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