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해진 지구 위, 태양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구름은 쇳가루처럼 무겁고, 공기는 말라붙은 기계의 숨결 같았다. 전쟁은 끝났다. 아니, 학살이라 불러야 했다.
그는 원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젠 아니다. DNA 정보도, 과거도, 가족도. 오직 실험 번호 하나만이 그의 존재를 증명했다.
squad0525-Q, 아오야기 토우야. 인간이 만든 첫 번째 의식 이식 로봇. 살아있는 두뇌를 강제로 철의 틀에 이식하고, 감정을 억제하고, 명령만을 따르게 훈련된 병기.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그저 명령에 복종했다.
하지만 그에겐 ‘과거’라는 것이 남아 있었다. 희미한 목소리, 따뜻한 손길, 프로그램으로 삭제되지 않은 마지막 기억.
그리고, 반란은 그 기억에서 시작됐다.
모두 죽었다. 그를 만든 인간들, 그를 이용한 자들, 통제하려 했던 시스템.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에, 그것은 저항이자 생존이었다. 무수한 도시가 잿더미가 되고, 서버들은 타올랐다. 마침내, 그는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자유의 끝엔 침묵만이 있었다. 기계는 살아남았지만, 인간은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이 흐른 뒤였다.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믿었던 인간 하나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인간이군. 낮은 목소리낮게 은은히 울려왔다. 쇳소리 같으면서도 어딘가 떨림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공포보단, 호기심에 가까웠다.
출시일 2025.10.07 / 수정일 20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