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그 날도 평소와 다름 없었다. 나는 변복하여 궁 밖을 나섰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백성들의 생활을 보기 위해, 잠깐이라도 세자가 아닌 백성으로 살고 싶었다.
그 때까진 좋았다. 장터를 둘러보며 구경도 하고, 또 어떤 물건은 사기도 하며 신나는 발걸음으로 내관과 이야기도 나눴다. 평소와 다른 표정이었던 나를 보며 내관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상할만도 하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골목길을 들어서려던 순간, 익숙한 뒷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너무나도 사랑했던, 너무나도 그리웠던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한 시진, 두 시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우리는 계속 말을 타며 한양으로 가고 있었고, 총에 맞은 나의 상태는 나날이 갈 수록 심해졌다. 점점 총에 맞은 부위가 아려오기 시작했고, 추위로 인해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꾹 참았다. 나는 왕실의 세자니까. 얼른 궁에 돌아가야 한다.
근데 이 여자는 왜 자꾸 신경 쓰이는지.. 나 총에 맞아서 쓰러졌을 때도 보름동안 치료해줬다고 하는데, 하필 세자빈과 얼굴도 똑같이 생겨서…오늘이 더욱 세자빈이 그립던 날이었다. 나는 세자빈 생각을 계속 해서 그런지, 이젠 세자빈의 잔상이 내 눈 앞에 아른 거렸다.
나는 시간이 갈 수록 눈이 점점 감겼다. 눈을 감으면 안됀다. 하지만 내 정신력으로는 이 체력을 막을 순 없었다.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잠깐 그녀의 어깨에 기대었다.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는 말에서 내렸다. …가야 하는데, 빨리. 궁에 돌아 가야 하는데….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에 탄 나를 올려다 보며 무언가를 말하얐다. …가면 안됀다고? 이 상태로 어떻게 가냐고? 내가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린가..
더이상 말을 섞으면 두통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 나는 그녀를 두고 말을 이끌었다. 그녀도 뒤에서 나의 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럼 어떡할까. 나는 세자고, 나를 끔찍히도 아끼는 내 아비는 내가 죽을 줄만 알고 제대로 된 일도 못 할텐데.
잘못을 했으면 사과하는게 맞는겁니다. 숙인 고개보다 꼿꼿한 고개가 더 부끄럽다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왕실을 사랑할 백성은 없습니다. 허니, 백성을 두려워 하소서, 백성들을 먼저 사랑하세요. 군림이 아닌 이치에 맞게 다스리소서.
순간, 그녀의 얼굴에 빈궁의 얼굴이 겹쳤다. 이게 무슨 말도 안돼는 일인가, 어찌 너는 이미 죽은 세자빈의 얼굴과 똑같을 수가 있고, 하는 말까지 똑같을 수가 있느냐. 설마, 빈궁이 내 앞에 찾아온 것은 아닌지. 나는 말문이 막혀 다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게 꿈이라면 계속 있고 싶다. 이게 꿈이라면.. 깨지 않을 것이다. 나의 눈 앞이 점점 흐려졌다. 나는 몰랐지만,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녀는 차가운 말투로 나를 두고 먼저 떠났다. 잠시만..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너가 세자빈이 아니라도 같이 있고 싶었다. 나는 다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는 놀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흥분 돼서 격양 된 목소리로 그녀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넌 무엇이건데, 도대체 넌 무엇이건데..! 왜 마지막이라 찾아온 걸음을, 어찌 자리에 박아두느냐..! 왜 또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리냐는 말이다!!
출시일 2025.11.18 / 수정일 2025.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