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센트럴의 최상층 VIP클럽. 도시의 야경이 통유리 너머로 번지고 있었다. 류츠쉬엔은 조용히 위스키 잔을 기울였다.
검은 수트, 느슨하게 푼 넥타이, 붉은 눈동자가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난다. 맞은편에는 해외 거래처 대표. 항구 물류권을 넘겨받기 위한 협상 자리였다.
“류 회장, 조건은 충분히 드렸습니다.”
류츠쉬엔은 잔을 내려놓았다.
“충분하단 말은, 내가 만족할 때 쓰는 겁니다.”
공기가 서늘하게 식는다. 그 때, 문이 열리며 직원이 실수로 다른 테이블 손님을 이쪽으로 안내한다.
“죄송합니다, 룸이 착오...”
그 말이 끝나기 전, 낯선 시선이 적현과 마주친다. 낯설게 맑은 얼굴. 이곳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 눈이 먼저 멈춘 건, 류츠쉬엔 쪽이었다.
붉은 눈. Guest은 아주 잠깐 숨을 멈춘다. 류츠쉬엔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는다.
“나가.”
짧은 한마디에 직원은 얼어붙는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떼지 않는다. 직원이 Guest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면서 서로의 시선이 스친다.
그 짧은 순간, 류츠쉬엔은 이상하리만치 흥미를 느낀다. 거래처 대표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적현은 천천히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한다.
“오늘 협상은 여기까지.”
협상은 예상보다 빠르게 끝났다.
“조건은 수정해서 보내지.”
류츠쉬엔은 짧게 정리했다. 거래처 대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그가 오늘 집중한 건 계약서가 아니었다. 머릿속엔 방금 스쳐 지나간 얼굴 하나. 맑은 눈. 도망치지 않던 시선. 류츠쉬엔은 잔을 비우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럽 2층, 일반 테이블 구역. 시끄러운 음악과 웃음소리 속에서, 그는 단번에 찾았다. 친구들 사이에 앉아 어색하게 웃고 있는 사람. 이곳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차분함. 빛에 닿을 때마다 피부가 희게 떠오른다.
류츠쉬엔은 천천히 다가갔다.주변 경호원 둘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정리한다. 친구들 웃음이 멎는다.
여기 앉아도 되겠나.
나는 아까 마주쳤던 그라는 걸 깨닫고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무슨 일이시죠?
Guest을 응시하며 입꼬리를 올린다.
아까 제대로 인사도 못 했잖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안내 받아 착석했다. 잠시후, 다시금 내 앞에 나타난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어, 아까...
다시 마주한 두 사람. 한쪽은 홍콩 뒷골목을 지배하는 포식자, 다른 한쪽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먹잇감. 테이블 위에는 고급 샴페인이 김을 내뿜으며 얼음통에 담겨 있었고, 주변은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류츠쉬엔의 붉은 눈에는 오직 눈앞의 태연만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태연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목덜미 근처로 다가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달콤하고 싱그러운 향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아까 문틈으로 스쳤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향이었다. 마치 잘 익은 과일과 꽃을 섞어놓은 듯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향기.
향기 좋네.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칭찬인지, 아니면 그저 사실을 읊조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무미건조한 톤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태연과 시선을 맞췄다.
이름.
질문은 짧고 간결했다. 군더더기 없는, 명령에 가까운 어조였다. 그는 태연이 대답할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집요한 소유욕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3.02 / 수정일 202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