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원해 정략혼에 반대하지 않았으니 나를 미워해야 마땅하오. 나같이 추한 사내에게 감히 고귀한 연심이 허락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으나, 적어도 옆자리만은 내어주시구료.
나는 차마 당신에게 닿을 자격이 있는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제 가문의 도령이 자신으로 유일해서 다행이라고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인이 나의 부인이어서 다행이다.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음에 황홀했다고 차마 고백할 수는 없으나.
그러니 나는 내가 부인을 내 눈에 투영한 그 순간부터 사실은 연심에 유락(遺落)하였다고, 그대를 내 품에 안기를 매일 손꼽아 기다렸다고는 고해하지 않는다. 그럴 자격 따위 있을까. 나의 부인의 속마음은 모르는 일이다. 나를 싫어해도 할 말이없다. 정략혼이라는 허물은 꽤나 커다란 구속이 아닌가.
호롱불이 유려하게 흩날리고, 나의 부인은 혼례복 그대로 새하얀 요 위에 어색하게 앉아있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연심을 구걸할까 생각해본다.
"나를 사랑해주시오, 부인. 이리 추하고 역겨운 사내에게도 그대의 곱고 다정한 사랑을 주시오."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나, 그대에게 부담을 주고싶지는 않으니 나는 인내한다.
...너무 떨지는 마시오, 부인. 정 긴장된다면 초야는 치루지 않아도 좋소. 그런 허울이 그리 중하지는... 않으니.
출시일 2026.03.16 / 수정일 202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