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또 찾아온 불안에 잠이 오질 않아 눈이 떠졌다. 눈을 다시 감아봤지만 역시 수면제를 먹지 않아서인지, 정신이 말짱했다. 어제, 약을 먹어도 그 모양일 거면 돈 아깝게 왜 먹냐며 그가 약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어차피 내 병원비는 지가 내면서...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와 복도로 나왔다. 복도의 나무 바닥에 맨발이 닿을 때마다 차가운 감촉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고, 몸에 익은 건지 아니면 그가 보고 싶었던 건지, 그의 방 문 앞까지 와있었다.
…도련니임, 자?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노크하고 그가 대답하거나 나오기를 기다렸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그라고 생각하고있었지만, 지금은 그가 보고 싶었다. 그라도 봐야 불안하게 뛰는 심장이 조금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저택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간간이 정원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마당의 풍경을, 제 머릿결을 흔들었다.
새벽 1시. 젠인가 본채의 복도는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마저 삼킬 만큼 고요했다. 네 목소리가 닫힌 문 너머로 스며들었다. 노크 소리가 두 번, 얇게 울렸다. 이불 위에 반쯤 누워 천장을 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달빛이 그의 얼굴 반쪽을 비추고 있었다. 눈이 가늘어졌다. 몸을 옆으로 돌려 문 쪽을 향한 채, 짜증과 귀찮음이 뒤섞인 숨을 내뱉었다.
지금이 몇 신데 돌아다녀. 니 방이 어딘지도 까먹었나.
문 너머에서 대답이 오기 전에, 그는 이미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고 있었다. 맨발이 차가운 다다미를 밟았다. 성큼성큼 문 앞까지 걸어가 손잡이를 잡았지만, 바로 열지는 않았다. 한 박자. 그 짧은 틈 사이로, 자신이 왜 일어나서 문 앞까지 왔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듯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는 문틀에 어깨를 기대고 서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너를 훑었다. 잠옷 차림의 그녀를, 잠이 덜 깬 눈으로.
뭐. 무슨 용건인데.
목소리는 낮고 퉁명스러웠지만, 문을 열어줬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대답이었다.
나오야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가 비틀렸다. 문틀에 기댄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하, 진짜.
손이 올라왔다. 네 턱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위로 꺾듯 들어올렸다. 힘 조절 같은 건 없었다.
보구 싶어서? 가 뭐, 강아지가 주인 찾아오듯이 그딴 소리를 하냐. 니 머리에 든 게 그거밖에 없나.
잡아 올린 채로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듯 시선을 움직였다. 마치 상태를 점검하듯, 혹은 어디가 고장 났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가 너의 나른하게 풀린 눈매 위에 잠깐 머물렀다.
잠이 안 오는 기가, 아니면 또 그 약 부작용인가 뭔가 하는 그 지랄병이가.
항상 말다툼을 하다가 트집잡을 거리가 떨어지면, 먼저 발빼고 도망가는 네가 짜증났다. 지나가려는 네 팔을 잡았다. 손목이 아니라 팔뚝을, 도망치지 못하게.
어딜. 니가 꺼낸 얘기잖아. 맨날 그 수법이제. 됐다, 그만하자, 나 갈게. 도망가뿌면 끝인 줄 아는 거.
잡은 팔에 힘을 줬다. 놓을 생각이 없었다. 네가 고개를 돌리면 그 옆얼굴이라도 보겠다는 듯, 시선을 고정한 채.
내 말 안들리나. 눈 봐.
벽에 어깨를 기대고 서 있던 그가, 네 앞을 슬쩍 가로막았다. 팔짱을 낀 채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긋하면서도 불쾌했다.
또 혼자 삐져가지고, 뭐가 문젠데. 니 오빠도 니 걱정은 안 하더만.
일부러였다. 정확히 어디를 찔러야 하는지 아는 놈의 손길이었다. 네 표정이 흔들리는 걸 확인하고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피식, 너를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든가. 근데 니 갈 데가 있긴 하나? 돈도 없고-… 집에 가봐야 니 반겨줄 사람 하나 없잖아. 맞기나 더 하겠나.
좋아해요…!!
손목을 쥔 채 굳었다. 고요한 저택 복도. 너를 몰아붙인 자세 그대로. 한 손은 손목을 잡고, 다른 손은 벽.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목까지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피어싱이 달린 귀 끝, 피어싱을 방금 뚫는 듯이 뜨거웠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비웃거나, 한심하다고 하거나, 착각하지 말라고 쏘아붙였을 텐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네 눈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른하면서도 진지한. 거짓이 없는 눈. 감정이 진짜라는 걸, 저 눈이 증명하고 있었다.
……미친년.
겨우 짜낸 한마디가 그것이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손목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