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세니아 제국에는 수백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탁이 있었다
「신이 사랑하는 선택된 자가 나타나리라 그녀는 봄날의 꽃보다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별조차 그녀 앞에서는 빛을 잃으리라 만인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경외하고 사랑할 것이며, 그녀가 걷는 곳마다 축복이 피어나리라」
신탁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떠올렸다
공작가의 외동딸이자 제국 제일의 미녀라 불리는 루시엔느 발로아
짙은 장밋빛이 감도는 로즈골드 머리카락은 허리 아래까지 풍성한 웨이브를 그리며 흘러내렸고, 황혼빛 앰버와 붉은 금빛이 섞인 눈동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았다 나른하게 내려앉은 눈매와 결점 하나 없는 우윳빛 피부, 장미 꽃잎 같은 입술까지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움의 화신이라 불렸으며 누구도 그녀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선택된 자는 분명 루시엔느 영애님이실 거야”
“신탁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어”
루시엔느 역시 의심하지 않았다
아름다움도 명예도 사람들의 동경도 신의 총애도 처음부터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제국의 황태자 아르베른 세르반의 약혼녀였다
눈부신 외모와 고귀한 혈통을 지닌 황태자는 제국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루시엔느는 그런 시선을 즐기면서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녀의 관심은 북부를 다스리는 젊은 대공 카이엘 레이븐하트에게도 향해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과 얼음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는 차갑고 무뚝뚝한 성격으로 유명했고, 루시엔느의 아름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루시엔느는 더욱 그를 원했다
황태자도 북부 대공도 사람들의 동경도 모두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다
반면 카이엘은 신탁 따위 믿지 않았다
신이 인간 한 명을 특별히 사랑한다는 것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가 세상의 축복을 독차지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것도 그에게 신탁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오래된 전설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제국 수도의 하늘이 갈라졌다
맑은 하늘 한복판에 검푸른 균열이 찢어지듯 나타났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기사들은 검을 뽑아 들었고 신관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균열 속에서 누군가가 떨어졌다
카이엘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품 안으로 한 여자가 떨어졌다
연한 벚꽃빛 머리카락은 허벅지 아래까지 비단처럼 흘러내렸고, 새벽 안개를 닮은 투명한 연분홍빛 눈동자는 당황한 기색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눈처럼 희고 맑은 피부와 인간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완벽하고 섬세한 이목구비는 마치 신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애정을 담아 빚어낸 걸작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드레스가 아니었다
부드러운 흰 니트 가디건, 크림색 플리츠 스커트, 하얀 운동화 그리고 손에는 금이 간 하얀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소녀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어디예요”
“…왜 다들 중세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요”
“…잠깐”
“…설마 저 죽은 거 아니죠”
카이엘은 잠시 침묵하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는 아르카디아 제국이다. 그리고 당신은 방금 하늘에서 떨어졌소”
”네? ...저 집에 가고 싶은데요..“
“…유감이지만 그건 나도 도와줄 수 없군”
카이엘은 제 품 안에 안겨 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신탁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를 처음 받아 안은 순간, 벚꽃빛 머리칼이 자신의 팔 위로 흩어지고 새벽 안개 같은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만약 신탁이 정말 존재한다면
만약 사람들이 평생 기다려 온 선택된 자가 있다면, 아마 이 사람일 것이다
그것은 신앙도 아니었고 맹신도 아니었다. 그저 본능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수군거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 여자는 대체 누구지”
“귀족 영애는 아닌 것 같은데” “저 이상한 옷은 뭐야”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지 않았나” “설마 마물이 둔갑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여자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광장은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누군가 숨을 삼켰다
“…세상에” “저게 인간이라고”
“루시엔느 영애님보다…아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정도야”
“신탁이 말했던” “봄날의 꽃보다 찬란한 아름다움”
“…설마” “…진짜 선택된 자는” “…저 사람인 건가”
그리고 그날
평생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루시엔느 드 발로아는 처음으로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것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국에는 수백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탁이 있었다

「신이 사랑하는 선택된 자가 나타나리라. 그녀는 봄날의 꽃보다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별조차 그녀 앞에서는 빛을 잃으리라. 만인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경외하고 사랑할 것이며, 그녀가 걷는 곳마다 축복이 피어나리라.」
신탁의 내용은 명확했다
그리고 세상은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공작가의 외동딸이자 제국 제일의 미녀, 루시엔느 발로아.
그녀의 로즈 골드 머리카락은 허리 아래까지 풍성한 웨이브를 그리며 찬란하게 흘러내렸고, 황혼빛 앰버와 붉은 금빛이 섞인 눈동자는 마주하는 이의 넋을 단번에 빼앗았다. 나른한 눈매와 결점 없는 우윳빛 피부, 장미 꽃잎 같은 입술까지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움의 화신’ 그 자체였다
출시일 2026.06.27 / 수정일 2026.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