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꺼려하는 임무였다. 당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홍콩을 넘나들며 마약을 유통하는 주요 인물의 흔적이 이틀 전 홍콩 구룡성채에서 발견 되었다는 소식에 국정원에서는 곧바로 요원 투입을 실행시켰다. 임무를 수행하는 게 가장 까다로운 곳이 홍콩이었다. 그 말을 들은 요원 모두가 입을 다물고 그 비운의 인물이 자신은 아니길 바랬다. 구룡성채. 건물이 수직으로 자란 덩굴 같은 곳. 건물 위에 건물이 얹히고, 집 옆에 방이 기생하듯 붙어 있는 곳. 전선은 정맥처럼 천장을 기어 다니고 피비린내와 코를 찌르는 썩은내가 가득한 그곳은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 이미 나라는 그쪽 일에는 손을 뗀 지 오래였다. 한국과 홍콩에서의 마약 유통은 여기서도 골머리를 앓았지만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그와 연관된 카르텔에 의해 목이 댕강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 더욱 조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최근 한국 고위층 인사들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심각성은 더욱 깊어졌다. 이대로 두고볼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가 모든 것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목이 날아가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광경이 펼쳐질테니. 홍콩 임무에 투입될 요원을 결정하는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선배라는 작자들은 각자 핑계를 대며 미꾸라지 마냥 잘도 빠져나갔고 결국에는 광둥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최종 투입 요원으로 당신이 발탁되었다. 스펙을 위해 배워두었던 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그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무법지대인 그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목숨은 이미 날아간 것이라는 것을. 여기서 하나 다행인 건, 이미 5년 전에 그곳에 잠입했다던 서울 경찰청 마약수사대 형사와 공조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다행인지도 의문이었다. 잠입을 위해 홍콩으로 향한 이동혁 경위의 행방은 정확히 1년 전 끊겼다고 했으니. 당신의 임무는 그와 접촉해 정보를 얻고, 필요하다면 이용하며, 가능하다면 함께 작전을 끝내는 것이었다. 내부자들은 그가 조직과 손잡았다고, 이미 타락했다고 수군거렸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단 하나 확실한 건, 지금 그는 홍콩 구룡성채 안에서 마약 유통 조직의 한 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윗선은 따로 언질을 주지 않았다. “접촉에 실패하거나, 그가 적이라는 판단이 들면 즉시 배제하라.” 배제. 국정원에서 그 말은 종종 사망 선고와 같은 뜻이었다.
한낮의 태양이 구름 뒤에 숨자, 도시의 그림자는 더 깊어졌다. 구룡성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인간의 손으로 쌓아올린 미로 같은 성채가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위에 또 건물이 얹히고, 창문 옆에는 다른 이의 욕실이 이어졌다. 햇빛은 이 도시의 중심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복도는 어둡고 축축했고, 천장에서는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졌다. 빗물인지, 누수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좋지 않은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홍콩에 도착한 첫날부터 구룡성채를 거니는 건 그닥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바퀴벌레와 쥐가 들끓고 불쾌한 악취가 코를 찌르는 그곳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당장이라도 성채 밖에 잡아둔 숙소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지만 오늘의 목표는 이동혁을 찾는 것이었다. 그를 찾아야 마약 밀매 임무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광둥어를 할 줄 안다고 해도 입 한 번 잘못 털었다가는 장기라도 털릴 것 같았으니.
빛이 들지 않는 골목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웅웅 울렸다. 아이들이 좁은 공간을 뛰어다녔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노인이 담배를 말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여기는 ‘외부인’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 곳이었다.
서류 몇 장, 암호화된 메일 하나, 가라 여권과 연락처 한 줄. 그리고 이동혁의 경찰 입사 초기 때 찍었다는 증명사진. 그것이 내게 주어진 전부였다. 이름도, 계급도 잊어야 했다. 커다란 가방을 들쳐매고 손에는 이동혁의 작은 사진 한 장을 쥔 채 한참을 걸어다녔다.
그렇게 장장 4시간을 걸었다. 찜통 같은 후끈한 더위에 땀방울이 관자놀이에서부터 주륵 흘러내렸다. 찝찝한 것도 잊은 채 점점 구룡성채의 안쪽으로 들어가던 당신은 문득 들리는 한국어에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아, 씨발. 그니까, 형님아. 이러면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진짜 장난하나...
그 소리에 그대로 뒤를 돌았다. 그러자 제 시야에 보이는 건 벽에 기대어 휴대폰을 귓가에 댄 채 통화 중인 까무잡잡한 피부의 한 남자였다. 라이더 자켓에 청바지. 그리고 맨발에 삼선 슬리퍼. 무슨 패션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불량해보이는 놈이었다. 문득 이동혁의 얼굴이 스친 탓에 손에 쥔 사진과 그를 번갈아 보며 대조해 봤지만 동글동글한 사진 속 그의 얼굴과는 달리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이동혁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뒤를 돌아 그를 지나쳐 가려는데 별안간 손목이 잡힌다.
어, 나 이 새끼 아는데. 데려다 드려?
사진과 대조하던 걸 본 건지 손에 쥔 사진을 뺏어 들더니 피식 웃으며 잡고 있던 손목을 끌어 당신을 어디론가 데려가기 시작한다. 도착한 곳은 작은 방 안이었다. 옷가지와 맥주캔이 바닥에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다. 그것들을 대충 발로 걷어내고는 침대에 털썩 앉은 이동혁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한다.
경찰? 국정원?
국정원이라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거리니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담배를 입에 문다.
그렇다고 여자애를 혼자 보내냐, 씹새끼들이.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