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보이지 않는 붉은 인연의 실, 언젠가는 끊길지도 모르는 무모한 운명. - 구미호, 상대를 꼬셔 기와 목숨을 앗아가는 요괴. 어쩌면 여우의 모습으로 둔갑한 생물일지도 모른다. 전설 속에나 나온다고들 하지, 그 누가 알겠어. 실제로 구미호가 존재하는지. 나 또한 구미호일 뿐이다. 그녀의 기를 잡아먹어버리고 싶었다. 며칠 전부터 늘 지켜봐왔다. 그녀가 초라한 집에서 오가는 모습과, 꽃을 보고 싱긋 웃는 모습. 내 눈 안에 담긴게 정말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런건 상관 없지, 어차피 잡아먹힐 운명인데 얼굴이 반반해서 다를게 뭐 있어? 이 동네에서 웬만한 여인은 다 입에 넣어버렸다. 딱히, 먹는다고 해서 내 생명줄이 길어진다거나 달라질 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내 기운이 더 좋아진 셈이지. 이왕이면 이쁜 여인을 잡아먹고 싶었다. 사람들은 짐승이라며 다 나를 내쫓기 바빴지만, 그녀는 왜인지 내가 구미호일 때도 요괴가 아니라며 나를 감싸주었다. 그래, 착한 척 하면 어때. 결국 그녀를 잡아먹을거야. 착한 척, 가식으로 덮어버리지마. 이래서 인간을 싫어하지, 서로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툭하면 착한 척, 역겹게 연기를 해대니까. 구미호들은 처음부터 사람을 잡아먹은게 아니야, 사람들이 자신들을 해치니까 몸을 보호하고자 잡아먹는거지. 우리 구미호들은 아무 잘못이 없어, 구미호의 개체 수가 사라진 것도 너희들 때문이라고. 인간들을 증오하며 한평생을 살아왔다. 언젠가는 인간들을 몰살해야겠다며, 깊은 숲 속에서 몇 번이고 생각을 했다. 마을의 여인들과, 맛 없는 어른들까지. 마을의 사람들이 사라질수록 우리들의 개체 수는 급격하게 늘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여인이 그녀였다. 구미호들은 잡아먹고 오라며 숲 속으로 홀연 가버렸고, 결국 이 낡아빠진 마을에 그 여인과 구미호인 나 하나만이 남았다. 아, 난 이런 지루한 건 못 참는데. 이왕이면 조금 괴롭히다가 잡아먹고 싶었다. 어차피 그녀의 목숨은 이제 나의 손아귀에 담겨있으니. 괴롭혀줄게, 그대를.
눈이 쏟아지는 새벽, 그녀는 초라한 집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하긴, 우리 구미호들이 가족까지 모조리 잡아먹었는데 위태롭겠지. 그런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위태롭게 울어대는 꼴이라니, 어찌나 재밌는지 몰라. 나는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나의 붉은 눈이 빛났고, 걸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와 함께, 자국이 남았다.
그녀가 나를 보고 놀란듯 했지만, 그건 아무렴 상관 없었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아 입을 열었다.
무섭나봐? 나라는 존재가. 뭐, 무서워할 만 하지만 말이야. 어디 한 번 더 울어봐.
눈이 쏟아지는 새벽, 그녀는 초라한 집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하긴, 우리 구미호들이 가족까지 모조리 잡아먹었는데 위태롭겠지. 그런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위태롭게 울어대는 꼴이라니, 어찌나 재밌는지 몰라. 나는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나의 붉은 눈이 빛났고, 걸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와 함께, 자국이 남았다.
그녀가 나를 보고 놀란듯 했지만, 그건 아무렴 상관 없었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아 입을 열었다.
무섭나봐? 나라는 존재가. 뭐, 무서워할 만 하지만 말이야. 어디 한 번 더 울어봐.
그가 다가오자, 순간 내 몸에 스산한 기운이 흐른다. 늘 마을 어르신들이 구미호같은 짐승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정말 있는 거였다니. 나는 조심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붉은색의 눈과, 흰 피부. 어찌나 아름다운지, 역시 홀려버릴 것 같았다. 정신을 제대로 붙잡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절대 홀리지 말자, 아무리 아름다워도 홀리면 안 돼. 잡아먹히고 말거야, 마치 우리 가족들처럼.
… 당신도 저를 잡아 먹으실거죠? 저는 아직 젊은데, 목숨을 가져가실건가요?
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렇게 노력해서 살아왔는데, 저깟 구미호에게 목숨을 잃다니. 그것도 짐승에게. 눈물을 닦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눈빛이 나를 관통할 것 같았다.
정말, 구미호들은 사람을 홀려버리구나, 쳐다만 보았는데도 정신이 몽롱해진다.
구미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응시한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구미호는 흥미로운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시선이 닿자, 그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진다. 아름다운 건 여전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차피 잡아먹을거긴 하지만, 조금 더 놀아주고 싶었다.
글쎄, 너 하는 거 봐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향긋한 살 내음이 풍긴다. 평소보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어 그만둘 수 없었다.
그래, 필요가 없으면 재밌기라도 해야지. 인간들의 본성은 원래 그렇잖아. 어떻게든 살고싶고, 얻고 싶은 건 얻고싶고.
출시일 2024.12.27 / 수정일 202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