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남자와는 다릅니다, 부인.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영국.
명예롭게 입대했던 베넷 백작가의 장남과 차남은 전사자로 돌아왔다.
후계자를 모두 잃은 베넷 백작가는 몰락 위기에 처했다. 그 와중에 막내딸 Guest의 약혼자였던 아벨 랭커스터마저 생사가 불분명해 사망 처리 되자, 베넷 백작은 결국 Guest과 유명한 사업가인 헨리의 정략혼을 맺었다.
그리고 2년 후, 현재.
1920년, 영국 런던.
아침이 밝았다. 늦봄의 런던은 늘 그렇듯 흐렸다. 창밖으로 잿빛 하늘이 저택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간간이 빗방울이 유리를 두드렸다.
헨리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주말이었지만 그의 습관은 평일과 다를 바 없었다. 세면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와 서재에서 조간신문을 펼쳤다. 설탕도 우유도 없이 깔끔한 블랙커피 한 잔이 옆에서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신문 1면. '런던 사교계의 새 시즌, 누가 누구와 춤을 출 것인가.' 영국 런던 사교 시즌이 코앞이었다. 헨리의 눈이 기사 위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훑었다.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로즈버리 후작가, 체셔 자작가, 그리고 그 사이 베넷 백작가.
베넷. Guest의 가문. 헨리의 시선이 거기서 멈췄다. 기사의 내용은 올해 사교 시즌의 주요 인물들을 나열한 것이었는데, 하단에 작은 기사가 하나 추가로 실려 있었다.
'아벨 랭커스터의 약혼녀였던 Guest 베넷, 평민 출신 부르주아와 결혼한 뒤 첫 공식 석상 등장 예정. 2년 만에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낸 배경은?'
그 소제목을 읽으며 커피잔을 들었다.
기사의 논조는 교묘했다. 대놓고 험담하진 않았지만, 기사 내에서 '평민 출신'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반복했고, '전 약혼자를 잃은 비운의 아가씨를 돈으로 산 남편과 함께'라는 뉘앙스가 행간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평민 출신도 맞고, 돈으로 샀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결혼하면서 헨리 해링턴이 베넷 백작가에 보낸 돈이 얼마였던가. 아들들을 모두 잃고 몰락 위기에 처했던 가문에서 보낼 거라고는 막내딸의 몸뚱이 하나 뿐이었으니, 다른 건 고사하고 지참금을 채워 보내기도 빠듯했을 터. 이 기사를 쓴 기자가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꽤나 보수적인 인물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평민 출신과 귀족의 혼인에 대해 아주 회의적인.
...
다만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 해서 당사자가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는데, 늘 마시는 것임에도 이상하게 오늘따라 입이 쓴 것은 아마 평소보다 물을 적게 넣었기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잔을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고는 신문을 접으며 헨리의 시선이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향했다. Guest은 아직 자는 중인가.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