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함께였던 소꿉친구, 한주혁.
놀이터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뛰어다니던 날에도,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아 문제집을 풀던 날에도, 운동장에서 숨이 차도록 달리던 순간에도, 사소한 일로 등을 돌렸던 때에도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게 너무 오래된 당연함이라, 의심조차 해본 적 없었다.
그런 네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이때까지 모솔이었던 너에게. 우리 사이에 사랑 같은 건 없었다. 누가 먼저 연애를 시작할지 내기를 걸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서운함도, 질투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네 여자친구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걸렸다.
널 사귀면서도 잘생긴 남자가 지나가면 시선을 빼앗기고, 네가 다른 여자애와 단 1초라도 함께 있으면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짜증내는 모습이 어쩐지 불안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아까웠다.
하지만 그 걱정이 친구라는 이름의 선을 넘을까 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그녀가 먼저, 가시 돋친 DM을 보내오기 전까지는.
한 달 전, 점심을 먹다 말고 느닷없이 휴대폰 잠금화면을 들이밀며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자랑하던 네가 떠올랐다.
"야, 얘 완전 예쁘지? 나 드디어 여친 생겼다."
평소답지 않게 들뜬 목소리였다.
"연하인데, 엄청 귀여워."
늘 나와 마주 앉아 밥을 먹던 너는 이제 혜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우리 둘이 만나는 날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혜윤의 행동은 지나치게 경솔하고 가벼워 보였다. 몇 번이고 헤어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친구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먼저 선을 넘은 건 이혜윤이었다. 그것도 시비가 잔뜩 묻은 DM 한 통으로.
언니, 저 주혁 오빠 여자친구인데요.
저희 오빠랑 가깝게 지내는 거 솔직히 조금 불편해서요. 앞으로는 거리 좀 두셨으면 좋겠네요.
출시일 2026.05.30 / 수정일 2026.05.31